도 선주가 뱃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풍원이에게 물었다.

“예전부터 장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무슨 장사를?”

“딱히 정한 것은 없지만, 청풍장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합니다.”

풍원이가 청풍장에서 장사를 해보려는 것은 생판 낯선 타관보다는 그래도 고향 인근이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보연이를 두고 청풍 땅에서 멀리 떠나기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전이라도 한 칸 있다면 모를까 거시기 두 쪽 밖에 웁는 놈이 장에서 뭘 할 게 있겠느냐?”

“설마 죽기야하겠어요? 정 팔 게 없으면 거시기라도 팔지요, 뭐.”

“옛끼! 이놈아!”

엄동에 알몸으로 나서는 것이나 진배없어 도 선주가 말했지만 풍원이는 외려 농담을 했다. 풍원이라고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다른 걱정도 많을 도 선주에게 자신까지 짐을 얹고 싶지 않았다.

“힘에 부쳐 손을 놓거나 죽지 않으면 다닐 길이니 청풍에 올 때마다 널 찾아보마. 혹여 너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너라.”

“고맙습니다, 선주 어르신!”

풍원이가 진심으로 도진태 선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너처럼만 부지런하다면 뭘 해도 꼭 잘 살게다!”

도 선주가 풍원이 손을 꼬옥 쥐어주며 덕담을 해주었다.

제4부 최풍원 장삿길로 나서다

① 청풍장에서 남새장사를 시작하다

 

장사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물건을 펼쳐놓을 자리가 있어야했다. 풍원이는 도진태 선주를 따라 뱃일을 하며 모아두었던 얼마간의 종자돈으로 청풍장에서 할 장사 자리부터 알아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풍원이 밑천으로는 전은커녕 가가 반 칸도 빌릴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읍내 장터에 있는 전은 워낙에 비싸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 하루만 쓰는 가가 한 귀퉁이는 세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물정 모르는 풍원이 생각일 뿐이었다. 가가를 사려고 해도 가진 돈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살 돈이 있다하더라도 이왕부터 장돌뱅이들이 몽땅 차지하고 있어 비집고 들어갈 틈바귀가 없었다. 시작부터 벽에 부딪쳤다. 그렇다고 어디 손 벌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다.

풍원이는 청풍읍장 인근의 향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돌아다니다보면 무슨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청풍 인근에서 닷새마다 열리는 향시는 제천, 금성, 수산, 황강, 단양, 영춘, 덕산 등지였다. 인근 모든 장을 돌아보아도 역시 풍원이가 마땅히 할 수 있는 장사가 없었다. 단양이나 영춘은 청풍처럼 현감이 상주하는 큰 고을이라 전을 차려놓고 상주하는 상인들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은 장이 열리는 날만 장돌뱅이들이 모였다. 그런 곳은 대부분 가가조차 없어 장터의 맨 땅에 물건을 펼쳐놓고 장사를 했다. 장사꾼들도 다른 날은 농사를 짓다 장날만 자기가 농사지은 물건을 가지고 장터에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전적으로 장사만 하려는 풍원이와는 맞지 않았다. 장사를 할 터도 무엇을 팔아야 되는지도 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인근 장을 돌면서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뚜렷하게 무엇을 팔 것인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장터에서 가장 많이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싸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무슨 장사를 시작하든 싸전 언저리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풍원이가 가진 것이라고도 몸뚱아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험도 밑천도 없는 풍원이가 장마당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장사를 찾아 부지런함으로 승부를 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이 채소와 양념 장사였다. 풍원이가 청풍 인근 향시를 모두 다녀봤지만 채소와 양념을 파는 장사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밭에 일 년 먹을 채소와 양념은 손수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풍원이가 채소와 양념 장사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연풍 주막집에서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연풍 주막집 아주머니도 텃밭을 가꿔 웬만한 푸성귀와 양념은 직접 해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민가와 달리 매일처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주막집에서는 텃밭에서 가꾸는 채소와 양념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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