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드나보네!”

풍원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강가 자갈밭에 누워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떠올랐다.

떠내려가는 배를 막아보려고 온 정신을 쏟고 있을 때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도 선주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후다닥거리며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물이 쏟아졌다. 어서 물에서 나가야한다는 본능이 번개처럼 스쳤지만 마음뿐이었다. 풍원이가 물살에 휘말리며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살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팔다리는 허깨비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몸을 가눌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서도 풍원이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이동생인 보연이를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될 목숨이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천운이구먼!”

멍석물에 휘말리고도, 깊은 소에 가라앉아 얼마간이 흘렀는데도 살아났다면 그건 타고난 천운이었다. 하지만 천운도 도진태 선주나 배끌이 같은 주변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제 때 잘 만나야 천운도 따르는 법이었다.

“이눔아, 뭔 일을 하던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지. 무조건 아무데나 나선다고 잘 하는 게 아녀. 그러다 큰일이라도 당했다면 어쩔 뻔 했느냐?”

도 선주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풍원이를 보고 질타했다.

“죄송해요, 선주님!”

“남 말을 들을 때는 들어야지, 안 듣고 지 고집만 피우다간 당하는 거여. 세상 이치가 다 마찬가지여!”

도 선주가 다시 한 번 따끔하게 일렀다.

“선주님, 배는 어떻게 합니까요?”

배가 걱정이 되어 풍원이가 물었다.

“뱃놈이 물에서 살다보면 배 깨먹는 일이야 다반사지. 그깟 배는 또 지으면 되고, 사람 상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행이여!”

도 선주는 뱃사람답게 배짱이 두둑했다. 큰 재산인 배를 잃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풍원이는 통이 큰 도 선주가 부러웠다. 자신도 언젠가는 도 선주 같은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좀 쉬었다가 배를 다시 지을까 한다. 나를 따라 단월로 가겠느냐?”

도 선주가 풍원이 의향을 물었다.

“…….”

풍원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용궁에 한 번 다녀오더니 겁이 나느냐?” 

“그게 아니라…….”

풍원이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당장 갈 곳도 없는 풍원이가 도 선주의 물음에 즉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달리 있었다. 뱃일을 계속하다가는 언제 어느 귀신한테 채여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도 선주 말처럼 자신 한 몸 죽는 것이 두려워서만은 아니었다. 매일처럼 거친 강물을 오르내리다가는 돈을 벌어 보연이를 구해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번에야 천운으로 살아났지만 까딱하면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 뱃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보연이가 너무 불쌍했다. 풍원이는 뱃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선주 어르신, 뱃일을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풍원이가 마음을 다잡고 도 선주에게 자신의 의향을 전했다.

“그려. 하려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더 빠져들기 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여. 오죽하면 모두가 뱃놈이라고 천대를 하겄냐?”

“그래서가 아닙니다. 저 같은 처지에 세상 사람들 천대가 두려워 그러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되면 세상에 혼자 남게 될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누이동생이 네 목숨보다도 중하단 말이냐?”

“저승사자를 만나더라도 그 놈은 꼭 구해놓고 가야합니다!”

“그렇다면 땅을 밟고 살아야지. 방구가 잦으면 똥을 싸는 법이여. 뱃일은 항상 사잣밥 싸가지고 댕기는 험한 일이여. 그러니 물에서는 언제 당할지 모를 일이여. 뱃놈은 배가 칠성판이여. 항시 저승사자를 델구 다니지.”

죽음을 달관한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도 선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애초에 그만둬야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 이틀 하다보면 평생 그 일에 붙들리고 말어. 넌 뭔 일을 해도 될 눔이여. 그래, 뭘 하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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