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석 한국교통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우리는 재미있는 책뿐만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영화, 마음이 끌리는 대화 상대 등에 온정신을 빼앗기는 경험을 갖고 있다. 위기 상황이나 치명적 순간이 발생했을 때도 우리의 정신은 오직 거기에만 집중된다. 이런 경우라면 집중을 위해 우리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상황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집중력이 스스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학자들은 ‘수동적 주의력’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일들은 대개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덜 매력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자꾸만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집중력이 스스로 발휘되지 않을 때, 외부 자극이 충분하지 않을 때엔 어떻게 집중을 할 수 있을까?

고도의 집중 상태를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직업들도 있다.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외과 의사들이 거기에 속한다. 수술 가운을 입고, 손을 씻고 소독하며, 수술모와 마스크를 쓰는 과정부터가 이미 평소 생활에서 멀어지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의식을 통해 조금씩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주의력이 결코 분산되지 않는 자기만의 고요한 세계로 조금씩 발을 담그는 것이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면 의사의 시선은 환한 조명이 비치고 있는 제한된 공간에 집중된다. 나머지는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그 순간 가장 중요한 것, 환자와 수술이라는 본질적인 것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집도를 방해하지 않는다.

통신업체 노키아의 흥망사를 조명해보면 비즈니스 분야에서 집중력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미래, 혁신, 파괴적 사고 분야의 전문가인 베른하르트 폰 무티우스 박사는 강연을 할 때 종종 노키아 커뮤니케이션을 높이 치켜들고는 15년 전에 해당 전화기를 사용했던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듣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휴대폰 시장에는 노키아라는 브랜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던 노키아는 블렉베리 제조사인 리서치인모션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200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애플의 아이폰이 장차 발휘할 거대한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아이폰은 중대한 혁신 포인트들을 몇 가지 갖고 있었다. 우선 송신 기술이 매우 현대적이었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가동시킬 수 있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보유하고, 조작이 매우 간단했고, 무엇보다 터치스크린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노키아와 리서치인모션은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던 ‘키패드 방식’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지했다. 두 회사 모두 전략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판단 때문에 노키아는 휴대폰 사업부를 완전히 접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두 기업 모두 틀린 대상에 집중하는 바람에 사양길을 걷게 된 것이다. 노키아와 리서치인모션은 기존에 이미 성능이 검증된 제품, 아직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에만 집중했다. 그 제품을 약간 손봐서 개선할 생각만 했을 뿐, 진정 새로운 혁신 포인트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런 전략이 한동안은 통할 수 있다. 문제는 기존의 전통에 집중하다 보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혁신의 타이밍을 놓쳐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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