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무리 경험 많은 도진태 선주라 해도 맨 바닥에 배를 띄울 수는 없었다. 포탄여울 아래까지 겨우 당도한 짐배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배끌이들을 부르기 위해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모심기가 한창인 때라 마을에는 배를 끌 장정들이 부족했다. 아무리 작은 배라 해도 짐이 잔뜩 실려 있는 배라 적어도 예닐곱의 장정은 필요했다.

“자네들만으로는 어림도 없네!”

도진태 선주가 말했다.

“선주님, 낭중에 품값이나 넉넉하게 쳐주시구려!”

배끌이들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니네. 좀 기다렸다가 더 오거든 시작허세.”

“비리비리한 놈 몇 더 와야 갈곤치기만 합니다요. 선주님도 바쁜 터에, 가들 일 끝내고 오려면 저녁나절입니다요.”

“아무리 바빠도 서둘 일이 따로 있네. 만약 일을 그르치면 차라리 서두르지 않은 만 못허네.”

도 선주는 배끌이들의 말을 막으며 더 구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선주님, 이거 해 떨어지기 전까지는 청풍 읍성나루에 당도해야 합니다.”

단월 큰 배에서 옮겨 탄 화주가 도 선주에게 말했다.

“그래도 저 사람들만으로는 어림 없슈.”

도 선주가 또다시 불가함을 말했다.

“걱정 마슈! 평생 이 짓을 해왔는 데 이깟 손바닥만한 배쯤이야 우리 넷만 해도 식은 죽 먹기유!”

배 아래에 있던 배끌이들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 물건이니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화주가 배끌이들의 말을 듣고 도 선주를 몰아붙였다.

“안 될 일을 서두르다 일 그르칩니다.”

물길은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같았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물길은 그저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자만은 금물이었다. 평생 강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건방을 떨고 순간 방심하면 고기밥이 되는 것이 물일이었다.

“여보게들! 시작하게!”

화주가 배끌이들에게 소리쳤다.

“시작들 하세!”

배끌이들이 적삼을 강변 자갈밭에 벗어놓고 포탄여울 물골 속으로 들어섰다. 개중에는 바지까지 홀랑 벗고 짚신만 신은 채 알몸으로 물속에 들어가는 배끌이들도 있었다. 때로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물속을 드나들어야하기 때문이었지만 서너 벌씩 갈아입을 옷이 없어 애당초 옷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배끌이들이 밧줄을 어깨에 걸고 배를 끌기 시작했다. 군살이라고는 없는 배끌이들의 근육이 울퉁불퉁한 용솟음쳤다. 그 모습이 마치 쟁기질하는 소처럼 힘차보였다. 배가 서서히 물골로 들어서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선주양반, 괜한 걱정을 했소?”

거보라는 듯 화주가 도 선주를 비웃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바닥에 닿으며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짐을 잔뜩 실은 데다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짐배가 무게를 감당 못해 물속 튀어나온 바위를 넘지 못하고 얹힌 것이었다. 배끌이들이 서넛만 더 있어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 무난하게 넘을 수 있는 암초였다. 네 사람으로는 떠있는 배도 물살이 센 물골을 올라가기 벅찬 일이었다. 하물며 바위에 걸린 배를 그것도 짐을 가득 실은 배를 끌어낸다는 것은 항우장사 넷이 와도 힘든 일이었다. 배끌이들도 핏대가 서도록 줄을 당겨도 소용없었다. 모두들 과하게 힘을 쓴 탓에 기진맥진했다.  

“물길을 좀만 터주오!”

배끌이들이 소리쳤다.

물골 위에는 바로 포탄여울이 있었다. 수량이 많을 때는 필요가 없었지만 갈수기가 되면 포탄여울을 막아 물을 가둬두었다. 그러다 아주 가물어 물골조차 수량이 줄어들면 막아놓았던 돌둑을 터 물을 내려 보내 배를 끌어올렸다. 배끌이들은 포탄여울을 막아놓은 돌둑을 트라며 소리를 질렀다. 둑을 열어 물골로 물이 몰려 수위가 높아지면 배가 뜰 것이고 그 틈을 이용해 암초에 걸린 배를 끌어낼 생각이었다. 배 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배에서 내려 돌둑이 있는 포탄여울로 올라갔다. 뱃꾼들이 수량을 조절하는 돌둑을 조금 텄다. 물살을 이루며 물골로 물이 몰렸다. 그래도 배는 움직일 기미도 없었다.

“좀만 더 터 보슈!”

뱃꾼들이 달려들어 서너 발 쯤 둑을 허물었다. 눈에 띄게 물살이 빨라지며 물골에 물이 넘칠 듯 흘러내렸다. 바위 위에 얹혔던 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