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나는 이름을 알고 있는 꽃이 많지 않다.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구례에서 나는 초·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봄의 전령사인 산수유 꽃을 필두로 남도 구례는 온갖 꽃들이 자신의 모양을 내며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난다. 골목 어귀나 담장 너머로 어디서든 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꽃 이름도 꽃말에 대해 들어 본 적은 없어도 꽃은 늘 생활 일부분처럼 내 곁에서 피고 졌다. 굳이 지금처럼 꽃을 보려 관광버스에 오르지 않아도 말이다.

나무에 여린 연두 빛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그 위로 노란 꽃망울이 생기면 나는 아버지를 만나려 간다.

음력 3월 초는 아버지의 기일이다. 나에게 그날은 1박2일로 꽃구경을 가는 날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암진단을 받으신 지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가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팔순을 넘기신 나이에 비해 아버지는 건강하셨다. 다만 소화력이 떨어지시는 것 같다며 서울 큰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보고 싶다 하셨다. 말씀만 종합검진이셨지, 서울 나들이에 가까웠다. 서울에 사는 자식들도 볼 겸 여행 삼아 떠나셨던 길이었기에 우리는 결과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손을 흔들며 당신의 걸음으로 기차에 타신 아버지는 한 달 만에 앰뷸런스에 실려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암 선고는 당신에게도 가족인 우리에게도 황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딱 일 년이 지나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침은 환장하게 날이 좋았다. 장지에 가는 길은 섬진강변 남도 삼백 리 길이었다. 섬진강 강변 벚꽃 길을 시속 20km로 달리는 장례 차량 위로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족 중 큰언니가 말을 했다. ‘기사님 차 좀 세웠다 가시죠’ 큰언니의 제안에 차는 정차했고,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상복을 입은 채 벚꽃 나무 아래에 서서 멍하니 눈이 시리게 핀 벚꽃들을 바라보았다. 오빠들은 담배를 피우며 꽃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었다.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이 찬란한 봄날들이 주는 달콤함을 각자가 느끼고 있을 즈음에, ‘人生事 一場春夢이야’하고 큰언니가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 좋은 날 택해서 좋은 곳으로 가셨네”라고 작은언니가 큰언니의 말을 받았다. 언니들의 말에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당신을 보려오기 좋은 날을 택하신 것은 아닐까? 당신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아니었을까?

봄이 오면 나는 꽃들이 궁금해진다. 남도에는 무슨 꽃들이 피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산수유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나는 꽃의 향기를 찾아 그곳으로 몸을 돌린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아득하다. 닿을 수 없는 그 미묘한 느낌은 계절이 바뀌도록 내 속에 남아있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다하지 못한 마음 때문인지 모른다. 그 마음의 빛깔이 아쉬움인지 그리움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꽃향기는 진하게 전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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