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시인 충북예술고 교사
레닌이 이루고, 스탈린이 망쳤으며, 흐루시초프가 말아먹었다. 러시아 혁명을 떠올리면서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레닌은 코피 터지게 성심을 다해서 혁명을 이루었는데, 스탈린은 그 혁명을 좌시할 수 없던 자본주의 세력과 2차 대전 전쟁을 하느라 내부의 건전한 혁명투사들을 모두 죽이고 사회주의를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만들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고, 흐루시초프는 30년간 권좌에 앉아 룰룰랄라 놀기만 했습니다. 그 결과는 고르바초프 이후의 소련 연방 해체로 완성됩니다.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은 인류가 꿈꾸던 거대한 실험이 이제는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과정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정말 많은 교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인류는 더 이상 평등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어떻게 인류는 남을 탄압하지 않고 공평하면서도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꿈들이 허황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소련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몰락입니다.
혁명이란 사람과 제도를 완전히 갈아버린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러시아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천대받던 계층인 농민을 바탕으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완전히 뒤집힌 사건이고, 또 사회주의라는 전혀 새로운 체제 사회의 틀을 바꾸었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말뜻에 가장 가까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학자들이 러시아의 이런 매력에 빠져 역사를 연구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카아도 러시아 근대사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한 사회가 이렇게 완전히 뒤집어질 때는 그 안에 무수한 원인과 사건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들이 겉으로 들어나면서 진행되는 사건이 혁명이기에 러시아 혁명사는 정말 매력을 끄는 사건이고 주제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혁명사나 역사 연구에서 러시아 혁명사보다 더 많은 연구를 낳은 분야는 없을 것이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사회주의권 내에서도 열심히 연구했지만 그 반대편에서도 수많은 연구서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 세대에 일어난 사건이어서 그 당사자들이 아직도 살아서 전하는 이야기의 생동감 때문에도 문학과 각종 예술로 엄청나게 많은 조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층이 혁명의 주역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고민에 빠진 것이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러시아에는 혁명을 이끌 노동자 계급이 다른 유럽 선진국처럼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바꾼 사람이 레닌입니다. 레닌은 농민이 혁명의 주력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장 무르익은 시점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통설을 뒤집고 유렵 자본주의의 먼 변방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합니다.
이 책의 특징은 사건이 전개되는 순서대로 서술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객관성을 표방한 것인데, 그러다보니 혁명의 주된 사상을 다소 소홀히 하고 사건만을 따라가는 싱거운 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권에서 나온 러시아 혁명사 책은 너무 이데올로기로 뒤범벅이 되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데, 그런 단점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장점입니다. 서구학문으로 무장한 지식인의 눈에 비친 러시아 혁명사를 따라가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