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꾼이 하는 일은 나루터에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막일이었다. 살다 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인생 막장에 떨어진 사람들이 하는 고된 일 중 고된 일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힘만 쓰면 되는 것이니 누구나 할 수는 있었지만, 워낙에 힘든 일이라 웬만한 강단과 뚝심이 있는 장정도 하루를 하면 다음날은 쉬어야 할 정도로 배겨나기 힘든 것이 나루터 담꾼들 일이었다. 게다가 갖은 풍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막장 인생들이 모여 있으니 거칠기가 배고픈 승냥이 소굴 같았다. 그러니 누가 보아도 하룻강아지처럼 순한 티가 줄줄 흐르는 풍원이가 담꾼 일을 감당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너 같은 애송이 뱃일 시켰다가 애 잡는다고 어른이 욕먹는다.”

“뱃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녀!”

보는 선주들마다 풍원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전 꼬맹이술까지 냈다고요!”

“꼬맹이술 같은 소리 하네! 이눔아, 여기서는 그깟 꼬맹이술 이빨도 안 났다. 여기 오면 상머슴도 코흘리개여. 뱃일은 집일 대면 할애비에 할애비여! ”

풍원이는 자랑삼아 꼬맹이술을 이야기를 했지만 선주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밥만 먹여줘도 할께요.”

“네 놈이 뱃일해서 밥값이나 허겄냐?”

선주가 콧방귀를 뀌었다.

“뼈가 빠져도 할 테니 일만 시켜주세요!”

“허허, 그놈이 안 된데도 그러네. 냉큼 딴 데로 가!”

“죽는 일만 아니라면 뭐든지 할 테니 시켜만 주셔요!”

풍원이는 죽자사자 선주에게 매달렸다. 풍원이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선주가 받아주지 않으면 당장 저녁부터 굶어야 할 판이었다.

“그눔 질기기가 고래심줄이네!”

마침내 선주가 풍원이의 끈질김에 손을 들었다.

“담꾼은 뼈가 굵거든 허고, 우선 배안에서 먹고 자며 허드렛일부터 해보거라.”

“고맙습니다! 선주님, 고맙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었던 풍원이에게는 선주가 구세주였다. 더구나 나루터에서 담꾼 노릇을 하며 우선 입만이라도 벌어볼까 했었는데 질기게 매달려 잠자리까지 생겼으니 세상 근심거리가 일시에 사라졌다. 풍원이가 고마운 마음에 선주에게 연방 머리를 굽실거렸다.

“앞으로는 날 도 선주라고 부르거라!”

풍원이가 처음으로 타게 된 배의 선주는 도진태라는 초로의 늙은이였다. 키는 작달막한 단신이었지만 당당한 풍채에서 풍기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다부져보였다. 도진태 선주는 누가 봐도 한눈에 배꾼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도진태 선주는 충주 유주막 사람으로 작은 거룻배를 가지고 인근 강나루 마을을 돌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뱃꾼이었다. 도 선주는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 하류의 단월 나루터를 본거지로 유주막을 거쳐 수주팔봉을 거쳐 상류의 목도나루까지가 주된 활동지였다. 때때로 일거리가 생기면 남한강 본류를 따라 살미·황강·한수·청풍을 오가거나 멀리 단양·가곡·영춘이 있는 상류까지 올라가기도 하는 짐배였다. 도 선주의 거룻배는 한양에서 충주로 내려와 짐을 부리는 큰 배로부터 물산을 받아 지류의 작은 나루터 장사꾼들에게 도매로 넘기거나 때에 따라서는 직접 소매도 하는 그런 배였다. 수심이 얕은 지류에는 수백 석을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풍원이는 도 선주의 배를 따라다니며 잔일을 했다. 뱃꾼들이 짐을 부리고 나면 배 안에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며 뱃꾼들이 하는 일도 거들었다. 풍원이는 조금만 틈이 나도 쉬는 법이 없었다.

“그 녀석 강단이 대단하네!”

풍원이는 잠을 자기위해 누워있는 시간 외에는 빈둥거리는 법이 없었다. 체구는 왜소해 보였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손발을 놀리며 일을 하는 풍원이를 보며 도 선주와 뱃꾼들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세상천지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 청할 사람이 없는 풍원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부지런함뿐이었다. 그 부지런함이 마음에 들어 도 선주와 뱃꾼들은 틈틈이 뱃일과 장사하는 법을 풍원이에게 알려주었다. 풍원이는 그들에게 배우는 모든 일이 새롭고 즐거웠다. 배가 나루터에 닿아 물산들을 하역하고 나면 뱃꾼들은 한동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 선주나 뱃꾼들은 나루터나 장터의 주막이나 색주집을 찾아가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풍원이는 배가 나루에 정박을 하고 뱃일이 없는 날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마당을 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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