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 김참봉 집 새끼머슴으로 들어가다

최풍원이 고향 인근 청풍으로 돌아온 것은 열다섯 되던 해였다. 식구들이 도화동을  떠난 지 다섯 해 만이었다. 떠날 때는 네 식구였었지만, 할머니와 어머니를 타관에 묻고 두 남매만 돌아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버지의 탐욕으로 떠날 당시에는 식구들이 눈엣가시가 된 처지였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두 남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청풍으로 돌아온 최풍원은 성내 김 참봉네 집 새끼머슴으로 들어갔다. 본래 새끼머슴은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될 뿐 세경은 한 푼도 없었다. 보연이 역시 입만 해결하며 안채 부엌에서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당장 갈 곳도 없는 남매에게 입에 풀칠만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행이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짐승처럼 살던 새재 수리골에서의 고생에 비하면 새끼머슴 일은 호강이었다. 따뜻한 구들에 등을 대고 잠자고, 우선 굶지 않는 것만 해도 행복에 겨운 일이었다.

김 참봉 집은 농사와 장사를 같이하는 도가였다. 집안 머슴만 해도 스무 명이 넘었다. 김 참봉은 재산 못지않게 비밀 이야기도 많아 온갖 소문이 사람들 입에 붙어 다녔다. 원래는 성씨도 김 씨가 아닌데, 개백정을 해서 모은 돈을 주고 손 끊긴 어느 파보 밑으로 들어가 이어 붙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참봉도 어느 세도가에게 막대한 재산을 바치고 사들였다는 소문이 있어 뒷구멍에서는 ‘개참봉’이라고 비웃었다. 고향도 청풍이 아니라 자신의 출신을 속이기 위해 젊은 시절 먼 곳에서 이주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참봉 밑에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 많아 마을 사람들은 뒷구멍에서만 쑥덕거릴 뿐이었다.

김 참봉은 청풍 인근에서 둘째라면 서운할 정도로 택택한 부자인데도 파리 다리에 묻은 장도 빨아먹는다는 고린자비에다 호색한으로 인근에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김 참봉이 풍원이 남매에게만은 넘칠 정도로 너그러운 인정을 베풀었다. 어린 풍원이에게 더구나 새끼머슴에게 입만 그슬러 주어도 눈물이 날 지경인데 입혀주고 재워주고 해마다 추수 때면 알곡 반섬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머리털을 잘라 짚신을 삼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은공이었다. 그것이 고마워 아직은 뼈가 말랑말랑한 어린 나이였지만 풍원이는 농사일과 도가 안팎을 돌아치며 뼈가 닳도록 일을 했다. 온 섬을 받는 상머슴도 풍원이의 부지런함을 따를 수 없었다. 그러니 김 참봉에게 욕을 얻어먹는 것은 노다지 상머슴들이었다.

“저 어린놈이 온 후로 우리만 욕을 먹는구먼!”

상머슴 장구는 언젠가는 반드시 풍원이를 혼내주겠다며 별렀다.

“여우같은 놈! 지놈 혼자만 잘 보일라고.”

“저 놈 언젠가는 한번 따끔하게 손을 봐줘야 혀!”

김 참봉네 다른 머슴들도 풍원이를 눈엣가시처럼 못마땅해 했다.

풍원이는 아직 어린 나이라 상머슴이나 중머슴처럼 힘든 농사일은 할 수 없었다. 김 참봉 집에서 풍원이가 하는 일은 여름에는 꼴담살이, 겨울에는 구들을 덥히는 나무를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리고 집과 도가 안팎의 허드렛일을 거들며 틈틈이 논밭으로 나가 상머슴들이 하는 일도 도왔다. 풍원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무슨 일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몸을 놀렸다. 상머슴이 한 번 짐을 져 나르면 어린 풍원은 두 번을 져 날랐고,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해져도 상머슴들이 한 만큼의 일은 채워야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바지런한 풍원이가 다른 머슴들의 눈에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의지가지없는 풍원이로서는 어린 동생과 자신을 받아준 김 참봉이 너무나 고마웠다. 풍원이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자신 남매들을 거둬준 김 참봉의 하해 같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풍원이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풍원이는 머슴이 아니라 김 참봉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한번은 타작한 보리를 섬에 담아 곳간으로 옮기던 중에 집안 머슴들이 조금씩 빼돌리고 있는 것을 풍원이가 발견했다. 곧 다가올 백중날 머슴들끼리 장마당에서 술판을 벌이고 투전판 밑돈으로 쓸 참이었다. 이를 보고 풍원이가 말렸다.

“아제들! 그러지 마세요.”

“이놈이 환장을 했나, 이젠 우리 일까지 참견이네!”

“그러게. 새끼머슴 주제에 누구보고 이래라저래라 지랄이여?”

“같잖은 놈! 보자보자하니 이젠 아주 주인 행세를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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