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얼굴은 봤는가요?”

“내가 그 집을 어떻게 들어가겠냐. 먼발치에서 떠나가는 행상만 보고 그 길로 되돌아왔구먼.”

“서운하셨겠네요.”

“그래도 한때 부부연을 맺고 살을 비비며 살았던 사람인데, 그렇지 뭐. 어린 너한테 별 소리를 다하는구나.”

“저도 열다섯이나 먹었는걸요.”

“첨 우리집에 왔을 때는 솜털이 보송보송했었는데 그새 그래 됐구먼. 장가가도 되겠구나.”

“그때 첨보는 우리 식구들을 어째 받아주셨어요?”

집도 절도 없는 부랑인을 그것도 넷이나 되는 식구를 어떻게 받아주었는지 풍원이는 항상 고마웠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아주머니에게 꼭 물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옥이를 업고 산지사방을 떠돌 때 누구라도 조금만 손을 내밀어주면 그게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절박함을 모르지. 우리 것은 사람들은 알지. 그때, 니 엄마의 막막한 처지를. 또 여자 혼자 주막을 하는 것보다는 식구들이 여럿 있으면 나그네들도 얗보지 않을 것 같기도 하구, 그래서 같이 지내자고 한겨.”

“어쨌든 우리 식구들을 살려주신 건 순전히 아주머니 덕분입니다.”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돕지 않으면 누가 우리 같은 처지를 알아주겠냐? 한 번도 배 곯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째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있겠냐. 부자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고통을 절대 알 수 없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풍원이가 진심으로 아주머니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네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너희에게 힘이 되고 얼마나 좋았겠냐?”

“…….”

느닷없이 꺼낸 아주머니의 어머니 이야기에 풍원이는 가슴이 먹먹해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맘이 허해서 그런지 오늘은 자꾸 괜한 소리만 하는구나……, 그런데 풍원아, 나도 주막을 그만 접어야겄다.”

“예?”

주막을 그만둬야겠다는 아주머니 말씀에 풍원이가 놀라 되물었다.

‘분옥이하고 나하고 두 입만 건사하면 되는 걸 악착같이 돈은 벌어 뭘 하겄냐. 여자 혼자 몸으로 거친 주막일을 한다는 것도 힘들고 왠지 자꾸 힘이 빠지네.”

“언제쯤 그만 두실라고요?”

“내놔봐야지.”

“지들도 갈 곳을 알아봐야겠네요.”

언젠가는 떠나야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당한 일에 풍원이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걱정 말그라. 니들 남매는 나하고 같이 가자구나. 주막을 처분하면 땅뙈기 마련할 돈은 나올 테고 그걸로 네 식구 밥이야 못 먹겠냐?”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전 농사는 안 지으렵니다.”

“그럼 뭘 하게?”

“아직은 생각중이지만 장차 장사를 해볼까 합니다.”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고, 흠한 일인데, 어린 니가 할 수 있겠냐?”

“그래도 농사는 안 지으렵니다.” 풍원이가 같이 살며 농사를 짓자는 주막집 아주머니의 호의를 사양했다. 풍원이가 그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청풍관아에서 아버지를 잃고 난 후 풍원이 는 절대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가 목숨을 잃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것도 모두 그놈의 농사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땅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며, 그것을 빌미로 고향사람들에게 박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결국은 땅이 아버지를, 그리고 할머니를, 어머니를, 종당에는 이 세상에 두 남매만 오갈 데 없이 만들어놓은 원흉이었다. 사람들을 착취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길을 생각했다. 그것은 장사였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해다주면 그 댓가를 받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장사가 장사였다. 고향을 떠나 연풍에서 타향살이를 하며 만난 많은 장사꾼들을 보며 장사야 말로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미 한참 전부터 풍원이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려서 경험도 없고 밑천도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 좋을대로 하거라. 그간 내가 너를 보니 너는 주막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살기에는 아까운 것 같더라. 바쁠 때는 나를 도와주고 틈이 나면 장사를 한번 배워보도록 해라. 여기는 장사꾼들이 많이 드나드니 주워듣는 것도 많을거구먼.”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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