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265년 조조로부터 내려오던 위(魏)나라는 몰락하고 서진(西晉)이 세워졌다. 사마염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바로 무제(武帝)이다. 무제는 가장 먼저 천하 통일에 힘을 기울였다. 그 핵심은 바로 오(吳)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양호(羊祜)를 형주도독으로 삼아 오나라에 대항하도록 했다. 양호는 부임하자 백성들을 교화하고 미신타파에 힘썼다. 또한 병사들을 동원해 농지를 직접 개간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 군대에는 석 달 양식뿐이었지만 농사를 지은 후에는 8만 군사가 십 년을 먹고도 남을 식량을 쌓아놓았다.

양호는 군대를 덕으로 다스렸다. 사냥을 갈 때면 오나라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주의했다. 병사들이 사냥감을 얻었더라도 그것이 오나라 쪽에서 쏜 것이라면 모두 돌려주었다. 또한 국경을 넘어오다 죽은 오나라 병사를 발견하면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었다. 한 번은 경계근무 사병들이 오나라의 어린아이 두 명을 잡아왔다. 양호는 즉각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주었다. 며칠 후 두 아이의 아버지가 처자식과 부모를 데리고 양호의 군영으로 투항했다.

이무렵 양호에 대항하는 오나라 장수는 육항(陸抗)이었다. 그는 전쟁에 뛰어난 장수로 양호는 감히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루는 육항이 병이 나서 사방으로 약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양호가 즉시 좋은 약재를 보냈다. “이 약은 내가 먹으려고 지었는데 때를 놓쳤소. 그런데 당신이 병이 났다고 하니 마침 잘 되었소. 완쾌되기를 빌겠소.”

육항이 약을 먹으려 하자 부하들이 말렸다. 이에 육항이 말했다.

“내가 이전에 양호에게 술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양호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술을 다 마셨다. 저 쪽이 덕으로 나오는데, 내 쪽이 불신으로 맞선다면 이는 싸우지 않고 굴복하는 것이다. 양호가 어찌 사람을 속이겠는가?”

하지만 육항은 양호가 덕으로 자신을 제압한 것을 알지 못했다. 얼마 후 육항이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양호가 오나라 정벌을 주장했다.

“오나라가 장강이라는 요충지에 의존하고 있지만 겁낼 것이 없습니다. 험준한 요충지는 쌍방의 세력이 막상막하일 때는 가능하지만, 우열의 차이가 확실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오나라는 군주와 신하가 서로 의심하고 있고 병사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무기도 뒤떨어지고, 훈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 군대는 자원과 군비가 막강하여 오나라를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이에 무제가 승낙하였다. 양호가 추천한 왕준과 두예를 장수로 삼아 오나라를 쳐서 크게 이겼다. 280년 3월 오나라가 멸망했다는 승전보를 전해들은 무제는 축하의 술잔을 들며 말했다. “이 모두가 죽은 양호의 공이로다!” 이는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있는 고사이다. 양장피단(揚長避短)이란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버려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말한다. 그 장점이 상대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대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고만고만한 재주로 일인자의 자리에 오르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있다. 숭어가 뛴다고 망둥이도 따라 뛰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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