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수필가

자릿세도 내지 않으면서 슬그머니 자리를 편다. 넉살도 좋다. 동정심이라도 얻을 요량인지 포도송이처럼 뭉글뭉글 잡힌 물집의 고집이 대단해 보인다. 쌍둥이 빌딩에 옥탑방까지 계획하고 있는 훈장을 보며 오늘도 온통 신경줄이 그리로 간다.

요즘 내 입술엔 피로의 흔적으로 돋아난 훈장이 보름이 넘도록 매달려 있다. 무슨 배짱인지 용감하기도 하다. 가라앉아 남은 흉터가 없어지기도 전에 다시 군림한다. 한 번 부르트면 보통 한 달은 되어야 없어진다. 아직 달을 채우지 못한 내 훈장은 아예 30일이라는 날짜까지 채우려는지 의기양양하게 윗입술에 앉아 주인 행세를 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걸핏하면 입안이 헐었다. 엄마를 닮아서 딸 셋이 다 그런데 그 중 내가 유난히 심했다. 과일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귀하던 비타민도 껌처럼 가지고 다녔지만, 먹을 때 입이 즐거울 뿐 입병을 막는 데는 효과가 없었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그 증세가 훨씬 심각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자리 잡는 물집을 직장 내에서도 모두 인정했다. “또야?”라는 표현이 아주 자연스러울 만큼 유명하게도 내 입술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훈장을 달고 다녔다. 그런 나를 보고 어른들은 결혼하면 나아질 거라고 했었다.

결혼하면 훈장도 철들고 겸손해질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기 전과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조금만 무리하게 일을 하면 아주 힘들게 중노동 한 사람처럼 금방 물집이 잡혀버린다. 명절을 보내거나 집안 행사를 치르고 나면 누구보다도 발빠르게 달려와 달갑지 않은 선물 공세를 한다. 외며느리의 역할을 드러내 주듯 입술이 다 부르트고 까칠한 얼굴이 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피로가 느껴지면 바로 입술이 근질거리면서 터를 잡아 입술선이 분명하지가 않다. 화장하면서 예쁜 색깔의 립스틱이라도 바르려고 하면 도무지 어디가 입술선인지 분간이 안 돼 포기한 적도 많다.

우리 집 서재엔 화랑무공훈장을 달고 찍은 시아버님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다. 투병생활을 하실 때에 찍은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버님께서 자랑스럽게 여기시던 훈장을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달아 드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공무원이시던 아버님은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셨다. 초등학교 교감이셨지만, 어린 고교생들이 조국수호를 위해 학도병으로 가는 것을 보고 전시입대를 하신 것이다.

덕분에 신혼이었던 어머니와도 생이별하고 최전방의 소대장으로서 지금의 휴전선 부근 철의 삼각지 김화 김일성 고지 전투에 참여하시게 되었다. 훈장은 백마고지 전투에서 받으신 것이다. 아버님 가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훈장은 김화전투에서 남긴 종군일지와 함께 유품으로 자랑스럽게 남아 있다.

수십 년 전에 아버님의 가슴에서 영광스럽게 빛나던 훈장이 아버님의 지난날에 대한 공로를 말해 주고 있듯이 내 입술에 물집이 가끔은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집안일이 힘들어 몸살이 날 때면 몸 상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공짜란 없는 것 같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더니 딸애도 내 체질을 똑같이 닮았다. 요즘 신설학교로 발령나 매일 야근하는 딸애의 입술에도 수시로 물집이 잡힌다. 위아래 구분 없이 자주 물집이 생기더니 딸애의 입술선이 흐릿해졌다. 거울을 보며 엄마를 닮아 속상하다는 딸을 보고 남편은 닮을 것이 없어 그런 것까지 닮아서 고생하느냐고 놀리지만, 유전의 법칙은 어쩌면 그렇게 정직할까 싶다.

오기가 생겼다. 예전에는 지저분해 보이고 창피해 사람만나는 것도 불편했는데 오랫동안 입술에 난 물집으로 고생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이젠 물집이 터져 상처 부위가 쓰리고 아프지 않으면 절대로 약을 쓰지 않는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통증 때문에 진통제와 연고를 늘 가까이에 두고 살았는데 그런 약이 통증을 완화 하나 물집을 다스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매스컴에 나오는 연고 광고를 볼 때마다 눈이 번쩍 띄어서 사들여 놓고 끝까지 쓰지 못하고 또 새로운 약을 사곤 했지만 소용없었다. 물집은 언제나 아플 만큼 아프고 어느 정도의 유예기간이 지나야 없어진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번엔 얼마나 오래가나 보자고 아예 손도 안 대고 내버려두었다. 서로 말 없는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눈치를 챈 것인지 드러내놓고 땅 따먹기를 하자는 것 같다. 재주도 좋다. 점 하나 정도이던 부위가 조금씩 점령하더니 드디어 빌딩을 짓는다.

무신경하게 지나치다가 오랜만에 거울을 들여다본다. 제법 큰 규모의 쌍둥이 빌딩이 완성되었다. 허가를 내고 승인을 받으려면 아직 며칠의 시간이 필요한 듯 물집이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홧김에 무허가 건물이라고 신고하려 손을 대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덤터기를 쓸 것만 같다. 나는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반갑지 않은 훈장을 달고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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