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시집에서는 당장 쫓아내라고 야단이었지만 그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게 너무나 고마워 시집살이가 아무리 매워도 참아낼 수 있었단다. 그런데 철모르는 어린 것에게까지 모질게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더구나. 어미가 죄인인데 왜 아이에게 그토록 모질게 하던지. 분옥이가 겨우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을 때쯤이니 돌이나 갓 지났을까. 그 어린 것이 범이라면 무서워하겠니, 죽인다면 알겠니. 눈도 안 떨어진 강아지 같은 그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아주머니는 설움에 겨운지 말끝을 맺지 못했다.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부엌에서 일을 하다 들으니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거여. 그래 나가봤더니 시어머니가 소두방 뚜껑만한 손으로 한줌도 안 되는 분옥이 양 볼테기를 사정도 없이 치고 있는거여. 나는 어민데도 죄인이라 말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단다. 시어머니는 한 손으로 아이의 두 손을 꽉 다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로 그 여린 볼을 얼마나 쳐대던지…… 인간도 아니여! 아무리 남 자식이라 해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 집에서 키우는 가축도 그리 하지는 않았을거구먼!”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지 아주머니는 이를 응시 물었다.

“에미가 보고 있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시어머니는 그렇게 한참을 모질게 분옥이 뺨을 쳐대며 호달구더니 두 손을 쥐었던 손을 놓아주더구나. 겨우 시어머니로부터 풀려난 분옥이가 봉당 아래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날 보고는 뒤뚱뒤뚱 걸어오다 마루 끝에서 떨어지며 봉당 댓돌로 공중재비를 하며 곤두박질을 쳤단다. 생각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여. 그 여린 머리가 단단한 댓돌에 생재비로 부닥쳤으니 온전할 리가 있겠냐? 머리에서는 피가 샘솟듯 하고 내가 놀라 어쩔 줄 몰라 울고불고 하는 데도 시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종자도 모를 그깟 년! 뒤지거나 말거나!’ 하며 천연덕스럽게 쳐다보고만 있더구나. 아마 분옥이가 이상해진 것이 그때부터 아닌가 싶다.”

아주머니는 분옥이가 어눌하게 된 것이 모두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요?”

“나한테야 어떤 짓을 해도 견딜 수 있었지만 어린 아이에게까지 해코지를 하는 것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분옥이 친부와 다시 어떻게 해볼 심산으로 분옥이를 엎고 도망치듯 친정으로 갔는데,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더구나. 나 좋자고 남의 꽃밭에 불 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정에 머물 수도 없고 시집으로 되돌아 갈수도 없고…….”

오도 가도 못했던 당시의 막막함이 떠올라서인지 아주머니 얼굴에서 안타까운 표정이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린 너한테 별 얘기를 다하고, 이 아주매가 주책바가지구먼. 그래도 오늘은 왠지 누구한테라도 이 속을 뒤집어 시원하게 풀어놓고 싶구나. 아주머니는 밤이 이슥하도록 자신의 가슴속에 쌓인 불덩어리들을 풀어놓았다. 무작정 시집을 뛰쳐나온 이후 아주머니가 겪은 온갖 일들은 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겨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돌박이 어린 아이까지 혹으로 붙이고 다녔으니 그 고생이 작심했을 것은 뻔 한 일이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는 두 배를 채우기 위해 광주리장사부터 시작해 보따리장사를 하며 해보지 않은 장사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해본 장사보다 해보지 않은 장사를 꼽는 것이 더 쉽다고 고달팠던 그 시절을 이야기했다.

“무슨 질긴 인연인지 그렇게 장사를 다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하게도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단다.”

“누굴요?”

“남편! 그 사람도 등짐장살 했었거든. 장삿길에 객지에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주루룩’ 쏟아지더구나. 그이와 나 사이에 소생도 하나 없었지만 잠시라도 몸을 섞고 살았다고 정이 남아있었는지 그이도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더구먼. 그이는 남자도 힘든 봇짐장사를 어린아이를 달고 어떻게 하러다니냐며 차라리 주막집을 하라고 했지. 그이가 돈을 보태주고 그동안 내가 모아두었던 돈을 합쳐 이 주막집을 산거여. 그래서 나도 떠돌이 뜨내기장사를 접고 주막집을 시작하게 된 거여. 느이 식구들 만나기 두 해쯤 전이었을 거여. 모른 척 지나쳐도 그만인 사인데 그러지 않은 그이가 정말 고마웠지. 그런데 앉은장사를 하니 몸은 덜 고달펐지만 여자 혼자 주막집을 하니 별별 남정네가 다 추근거리는겨. 그래서 그 사람에게 장삿길에 지나는 길이면 좀 들려달라고 했지. 그 사람은 새장가를 들어 가정을 꾸리고 있었거든. 그래도 가끔 와주면 든든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더는 바랄수 없게 됐구나.”

아주머니 표정은 늦가을 서리 맞은 풀처럼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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