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들의 목소리에 전교회장이 다시 말문을 열었지만 말끝을 맺지는 못했다. 황소의 걸음이 빨라지자 목에 두른 줄이 조여지며 숨통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천주여 스테파노를 받아주소서!

천주교도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기도했다.

“뭣들 하느냐? 서두르지 않고!”

현감이 남 스테파노 회장의 처형을 재촉했다.

군졸 서넛이 더 가세해 황소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사방에서 황소의 코뚜레를 잡아당기고 엉덩짝을 채찍으로 쉴 새 없이 내리쳤다. 황소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친 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남 스테파노 전교회장의 온몸은 흙투성이가 되어 사람인지 나무등걸을 묶어놓은 것인지 분간조차 어려웠다. 남 스테파노는 끌려가면서도 뭐라고 외쳤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군졸들이 황소를 더욱 호달구자 더욱 날뛰며 내달았다. 남 스테파노는 목줄이 묶인 꼭두각시처럼 황소의 움직임에 따라 나무토막처럼 끌려갔다. 치명석과 남 스테파노의 머리와 치명석 사이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 스테파노의 묶인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동시에 머리와 치명석이 세차게 부딪쳤다. 남 스테파노의 머리에서 박 터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났다. 박속이 터져 나오듯 머리에서 검붉은 선지피가 쏟아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남 스테파노의 목줄과 황소의 길마에 묶인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래도 군졸들은 채찍으로 황소를 치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치명석의 좁은 구멍에 달린 남 스테파노의 목이 기역자로 ‘터억’ 꺾이며 땅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세워진 치명석 벽을 타고 붉은 피가 선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도들이 울부짖으며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몸소 /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 닦아주시리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으리라 / 고통도 없으리라

 

전교회장 남 스테파노의 죽음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신도들은 성가를 부르면서도 공포에 휩싸였다. 매를 맞거나 고문을 당하다 죽은 교우들은 수없이 보아왔지만 치명석 같이 목이 찢어져 떨어지는 사형도구로 잔인하게 죽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참수형처럼 순식간에 죽는 것이 아니라 목이 끊어질 때까지 고통을 당하다 죽는 흉폭함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말문을 잃었다. 신도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배교하면 이 자리에서 당장 방면하겠다!”

현감이 때를 늦추지 않고 회유했다.

“이제 마지막 기회이니라. 저 괴수놈처럼 모가지가 끊어져 참혹하게 개죽음을 당하든 천주를 버리고 목숨을 구하든 너희들 선택에 달렸다.”

현감이 목이 끊어져 조련장 마당에 뒹굴고 있는 남 스테파노 전교회장과 황천수 시신을 가리켰다. 신도들 사이에서 동요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서로들 눈치를 살피며 선뜻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풍원이 어머니도 남매를 끌어안으며 사색이 되었다.

“배교하겠으니 살려주시오!”

그때 신도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일어서며 배교를 선언했다. 수리골 교우촌 사람은 아니었다. 사내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어디 사는 누구더냐?”

“지는 재갱골 사는 전 서방이옵니다.”

“다시는 천주학을 믿지 않겠느냐?”

“야아! 다신 천주학 근처엔 얼씬도 않겠구먼유!”

“이게 모두 임금님 은덕이니 앞으론 양순한 백성으로만 살거라!”

“예! 예! 예!”

전 서방은 꿇어앉은 채 방아개비처럼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저 자를 풀어주거라!”

현감이 방면을 명하자, 군졸들이 전 서방의 결박을 풀어주었다. 전 서방이 황급하게 관아 문을 통해 나는 듯 밖으로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즉시 방면되는 전 서방이란 사내를 본 신도들이 크게 동요했다.

“저도 배교를 합니다!”

“저도 배교를 하겠읍니다요!”

“배교합니다!”

여기저기서 배교를 선언했다. 신도들 사이에서 큰 술렁임이 일었다.

“저들도 방면하거라!”

현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곧바로 신도들이 풀려났다. 이제껏 동헌마당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구경꾼들 속에서 안도의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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