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숙 수필가

한동안 돌보지 못한 잔디밭은 온갖 잡풀들의 경연장이 되었다. 민들레, 제비꽃, 쑥, 질경이, 씀바귀 등속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올해의 승자는 단연 쑥이었다. 한때 금잔디밭이라 불리기도 했었지만, 그 영화는 옛일이 되었고 이제는 그야말로 쑥차지가 되어버렸다. 앉을 자리 제대로 찾지 못한 잔디가 오히려 쭈뼛대는 모양새였다.

“이러다 잔디 다 죽이겠네. 아까워서 어째. 어머니가 보시면 놀라서 한마디 하시겠네.” 나는 허둥대며 잘하지도 못하는 호미질을 해댔다. 잡초의 저항은 생각보다 완강했다. 남편이 다가와 툭 친다.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손길을 멈추고 망연자실 마당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햇빛이 분가루처럼 분분하게 내리고 있었다.

청명이 지난 햇볕 따스한 날 시어머니가 마당에서 나를 부르셨다. 쪼그리고 앉아 계시던 어머니는 내게 쑥을 캐라고 하셨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잡초와 쑥을 구분할 줄 몰랐다. 어머니의 귀띔에 의하면 뒤집어보아 흰빛을 띠는 게 쑥이라 했다. 둘러보니 쑥을 비롯해 잡초가 마당 한 가득이었다. 어머니는 이들을 묵묵히 캐내고 있었다. 집안일에 눈코 뜰 새 없었던 나는 마당일에만 열심인 어머니가 내심 원망스러웠었다. 하지만 막상 참견하고 보니 이 곳의 일도 만만하지 않았다.

기왕 하려면 아예 뿌리까지 뽑아내라고 하셨다. 팔에 힘이 쑥 빠졌다. 미리 가르쳐주시지 하는 원망이 들었다. 집안에 달랑 하나밖에 없는 호미는 어머니 차지였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맨손으로 쑥을 캐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엔 과도와 가위까지 동원되었다. 하지만 마음만 바빴지 일의 진척은 더디기만 했다. 사정없이 내리꽂히던 햇볕에 등줄기가 따가웠다. 어머니도 힘이 드셨는지 화를 내고 계셨다. 이렇게 시작부터 삐꺽거렸던 쑥과의 조우였기에 그 녀석을 제거하는 일은 그닥 달갑지 않았다. 오늘 잔디밭이 이런 꼴이 되도록 방치해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았다.

어머니는 늘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몸빼를 입고 잔디밭에 쭈그려 앉아 작업을 하셨다. 불편해 보였지만 그 자세가 오히려 편하다 하셨다. 깔판을 마련해 드려도 마다하셨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아 고집도 참 유별나시구나 했는데 어느새 나도 어머니를 은근슬쩍 닮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꼭 한낮 햇빛이 쏟아질 때를 골라 잡초를 뽑곤 하셨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 그늘을 이용하면 오죽이나 좋을까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모기를 비롯한 독충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뭐 꼭 그럴라고?” 그때는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 어머니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았다. 오늘 따라 어머니의 얼굴이 왜 이렇게 눈에 밟혀오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만의 특별한 공간 마당. 우리는 그 마당을 어머니의 작품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동이 트기 무섭게 달려나가 마당을 깨우셨다. 마당의 식물들은 어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꽃을 피우고 무성해졌다. 외출해서도 화단에 물을 줘야 한다며 마치 젖먹이를 두고 온 새댁처럼 서두르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해마다 초록 융단을 선물로 받았다. 온 가족이 잔디밭에서 뛰고 뒹굴며 맘껏 누렸다.

어린 조카들은 동네가 떠내려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기차놀이를 했다. 인근에서 가장 시끄러운 집으로 원성이 자자했다. 봄이면 앵두, 살구 열매가 울타리에 산재해 있곤 했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시어버님과 친정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셨다. 여름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다.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정담을 나누고 수건돌리기며, 노래자랑이 벌어지기도 했다. 꼬마들이 각색 연출하고 열연한 얼토당토 않은 연극에 배꼽을 잡고 뒹굴기도 하였다. 여름 생인 딸과 아들은 이 마당에서 돌잔치를 했다. 외화의 자막처럼 지난날의 추억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여치, 메뚜기, 방아깨비, 사마귀가 튀어 오르고, 개미가 집을 짓고, 달팽이가 나무 밑에 숨던 시간들. 그 떠들썩했던 날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집을 떠날 때 마당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던 어머니는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셨다. 삼십여 년을 알뜰살뜰 돌봐왔건만 이젠 어머니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진 공간이 되었다. 아무리 치매를 앓고 계시다지만 이토록 하얗게 잊힐 수도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의 가족들은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마당은 마치 달콤한 꿈을 꾸다 한바탕 두들겨 맞은 채 버려진 것 같았다. 모든 영화가 사라진 마당은 내게도 낯설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왜 호미까지 들고 저 잡초들을 몽땅 없애버릴 듯 설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눈이 부시게 내리꽂히는 저 햇빛 탓인 것 같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핀 초롱꽃이 눈에 띄었다. 바람이 조롱조롱한 분홍 꽃을 종종종 흔들었다. 사방에서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숨어있던 꼬마들의 목소리가 핑퐁처럼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환영처럼 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어머니도 마당에 서면 우리를 맞을 생각에 이렇게 가슴이 뛰었을까? 떠나간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보았다. 내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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