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철 수필가

“갑수씨 아들 있잖아?”

“왜, 또 무슨 사고 쳤어?”

“모르겠어, 새로 부임한 지서장이 부뜰이를 찾아왔다는 거여.”

갑수씨 나이 쉰에 얻은 아들, 유부뜰! 무슨 일인지 자식을 여럿 낳긴 했는데 돌을 못 넘기고 제 부모 앞질러 하늘나라로 달려가는 통에 부부는 그야말로 세상 살아갈 재미를 잃어버린 듯했다. 마흔 넘어서 딸 둘을 간신히 붙들고, 마지막으로 태기가 있어 낳은 것이 아들이었다. 대가 끊기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었는데 아들을 점지해주셨으니 하늘을 훨훨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편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일곱 남매를 잃다 보니 정말 이번에는 잃으면 안 되겠기에 꼭 붙들고 있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들’이로 지었는데 자연스레 ‘부뜰’이로, 또 ‘쉰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둥개둥개 하면서 공을 들였다. 거리에 안고 나가면 너도나도 안아보자고 팔을 내밀 정도로 어려서부터 인물도 좋았다. 삼대독자의 대를 이을 아들이니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귀하게 키우는 만큼 고약한 버릇도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했다.

예부터 젊은이 자제에게는 ‘해라’를 해도 나이 많은 사람 자제에게는 ‘하게’를 하는 게 우리 동방예의지국의 미풍양속이다. 해서 부뜰이는 어른들에게도 크게 하대를 받지 않고 자라났다. 그러다 보니 그의 경로사상이나 부모공경 등은 기대할 수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갑수 씨 부부의 책임이기도 했다.

갑수 씨가 들에서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부뜰이는 잘 놀다가도 칭얼대며 등에 매달린다. 삼대독자 눈에는 아버지의 피곤쯤은 보이지도 않나 보다. 갑수 씨는 등을 내밀어 아이를 태운다. 부뜰이는 말을 타고 채찍질하듯 이랴! 이랴! 하면서 양발로 아비의 뱃구레를 마구 차며 어서 달리기를 재촉한다. 지금까지 피로에 지쳐있던 갑수 씨의 몸은 어느새 봄눈 녹듯 사라지고 충실한 말이 되어 열심히, 아주 열심히 방구석을 달려준다.

부뜰이는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직성이 풀린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 고샅을 다니다가 다른 아이가 들고 있는 장난감은 꼭 손에 넣어야 하고, 동네 유일한 새마을구판장에 들어가서는 무조건 양손 가득 과자를 들고나온다. 하는 짓이 너무 심해 못하게 할라치면 진흙탕이고 눈밭이고 가리지 않고 드러누워 마구 뒹구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조금 커서는 골목대장이 되어 또래 아이들을 휘어잡고 들고 있는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은 예삿일이고, 제사 지낸 집 아이는 이튿날 떡 한 쪼가리 갖다 바치지 않고서는 무사하지 못할 정도의 폭군 아닌 폭력아로 변해갔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부뜰이는 ‘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에서도 샌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점점 성격이 삐뚤어져 갔다. 코피 터진 아이의 손을 잡고 와 항의하는 젊은 새댁들에게 갑수 씨 부부는 ‘잘못했다’라고 빌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없는 살림살이에 십 남매씩이나 낳아서 다 붙들지도 못하고 병치레하다 보니 그나마 있던 서 마지기 자갈 논까지 날아가고 말았다. 그래도 갑수 씨는 아들 부뜰이만 보면 힘이 솟았고 싱글벙글 이었다.

갑수씨도 남들처럼 귀한 아들을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보내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라곤 달랑 불알 두 쪽뿐이니 방법이 없었다. 가뜩이나 비뚤어진 성격의 부뜰이는 더욱 난폭해졌다.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붙잡아 두들겨 패고 학교에 못 가 게 하는 일도 잦았다.

이제 갑수씨 머리에 서리꽃이 피어났다. 젊은이 서넛쯤 대들어도 눈도 끔쩍 안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망나니가 되어가는 부뜰이를 다잡아서 사람을 만들어야지 하면서도 아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심지어 아들을 붙잡으려다 넘어지면서 뒤로 짚은 손목이 부러지는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제 동네에서는 아무도 부뜰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이 무렵 칠성면 지서장이 새로 부임해왔다. 전임 지서장은 부뜰이의 행패를 알면서도 아직 어리고 갑수 씨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게 가엾어서 그의 행패를 방관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딱 한 번의 예외가 있었다. 신입 순경이 부임해오더니 부뜰이를 잡아들였다. ‘그냥 두었다간 동네 아이들 모두 패륜아로 만들게 생겼다.’라는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진정서를 보고 벌인 일이었다. 한 평도 안 되는 총기 창고에 가두고 적당히 겁을 주면서 두들겨 패기도 했지만 풀어주자 이내 옛날 부뜰이로 돌아 가버렸다. 그리고 더 심하게 하지 못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자신의 관내에 그런 무지막지한 폭력아가 있다는 사실이 상부에 알려지면 진급이나 출세에 지장이 있을까봐 전임 지서장은 쉬쉬하면서 묻어버리기 일쑤였다.

새로 부임한 지서장이 관내 상황을 살피던 중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직접 부뜰네 집을 찾아갔다. 당시 지서장이 가정집을 방문하면 큰 범죄자이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유지(有志)나 권력자의 집 등이어서 화젯거리가 되기도 했다.

“네가 부뜰이냐?”

“그런데요”

“참 잘 생겼구나. 마음씨도 곱게 생겼고”

지서장은 부뜰이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연세 많은 부모님에게도 잘한다는 소리 들었다.”

“누가요?”

“누구긴, 너 부뜰이지.”

“저는 아닌데요.”

부뜰이가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천하에 둘도 없는 망나니 같은 자신을 잘한다고, 그것도 면(面)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지서장이 칭찬하니 마음이 이상스레 혼란스러워졌다.

“부뜰이 자장면 좋아하지? 아저씨가 사줄 게 칠성 가자.”

이튿날 다시 찾아온 지서장은 부뜰이 손을 잡고 십 리가 넘는 비포장 자갈길을 걸어서 칠성까지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주었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음식인가. 부뜰이는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서장은 군만두 한 접시를 더 시켜 주었다.

며칠 지나서 다시 학성리를 찾아온 지서장은 동네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하고 부뜰이에게 효행상을 주었다. 거기에 자비(自費)로 산 커다란 괘종시계까지 상품으로 얹어주니 동네 사람들도, 갑수씨 가족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영문도 모르고 효행상을 받은 부뜰이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릴 적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 문턱에도 못 가고, 주경야독(晝耕夜讀)하고 청경우독(淸耕雨讀)하여 순경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지서장은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부뜰이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중학교 가지 못한 것 후회하지 말고 혼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할 수 있겠지? 내가 도와줄게.”

“네!”

부뜰이의 응어리진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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