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70년,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秦)나라가 폭정을 펼치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초나라 패현에서 항우(項羽)가 군사를 일으켰다. 그때 범증(范增)은 칠순의 나이에 항우 휘하에 들어가 지략과 지모를 펼쳤다. 그로인해 항우로부터 높은 신망을 얻어 전략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얼마나 머리가 비상했던지 역사서에서는 범증을 촉나라 제갈량과 비교되는 인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항우의 세력이 갈수록 커질 무렵, 건달 출신의 유방이 시골 한쪽에서 촌놈들을 데리고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항우의 휘하에 편입되어 나중에 진나라가 무너지자 한나라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 범증이 유방의 인물됨을 보고는 크게 위협을 느꼈다. 항우는 자신의 힘만 믿고 세력을 키우지만 유방은 그 밑에 따르는 부하들의 책략을 따라 쓰기 때문이었다.

“항우장군께서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한나라 유방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화근이 생길 것입니다.”

범증은 이렇게 수차례 유방 제거를 건의하였다. 하지만 항우는 그 말을 우습게 여겼다. 자신의 상대로 유방은 너무 허약했기 때문이었다. 항우에게 책사 범증이 있다면 유방에게는 모사 진평이 있었다. 진평이 범증의 계책을 알고 그을 쫓아낼 모사를 꾸몄다. 하루는 항우의 사신이 군령을 전달하기 위해 유방의 진영을 방문하였다. 유방이 사신을 귀한 자리에 모시고 극진히 대접하라고 부하에게 명했다. 이때 진평이 사신에게 물었다.

“그래, 그대는 범증이 보내서 온 사신이 맞소?”

사신이 그 말을 의아하게 여겼으나 공손히 대답했다. “저는 항우 대왕께서 보내서 온 사신입니다.”

그러자 진평이 관리에게 크게 외쳤다.

“항우가 보낸 사신이란다, 접대를 낮추어 하도록 하라!”

그 말과 함께 큰 음식상이 나오다 말고 다시 들어가고, 이내 초라하고 작은 음식상이 사신 앞에 놓여졌다. 사신은 이내 기분이 불쾌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초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항우에게 사실 그대로 고해바쳤다. 항우는 그 말을 듣자 범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아무런 일도 맡기지 않았고 어떤 책략도 묻지 않았다. 얼마 후 범증은 항우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자 미련을 접고 떠났다. 고향에 돌아가 실의에 빠져 쓸쓸히 죽었다.

이후에 항우는 유방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자신이 범증을 쫓아낸 것을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천하는 어느새 유방이 차지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사기본기(史記本紀)’에 있는 이야기이다.

물부충생(物腐蟲生)이란 생물이 썩은 뒤에 벌레가 생긴다는 뜻이다. 상대를 의심하면 그 뒤에 헛소문이나 비방을 믿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아무리 힘이 센 놈도 머리 좋은 놈을 결코 이길 수 없다. 그것은 상대를 읽고 상대를 교란시키는 책략(策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권력쟁탈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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