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3월이다. 아직 추위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3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임에 틀림없다. 얼마 뒤면 개나리며 진달래 같은 봄꽃도 피고 이어서 잎도 푸르러지리라. 학교도 3월초가 되면 입학식을 갖고 신입생을 맞이한다. 3월이 되고 입학식이 시작되는 계절이 되니 필자의 첫 시집에 실었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한 걸음씩 뗄 적마다/ 폭죽처럼 터지는 빛의 싸라기들/ 학교 가는 첫날/ 통통 튀는 막내 녀석/ 취학 통지서도 따라 올라/ 운동장만한 도화지 펼쳐/ 내 그 시절 선생님/ 기다리시네/ 부러움 채워 늘어선/ 가득한 시선 위로 막내 녀석/ 튀어 오르고 나도/ 벅차게 달려 오르고//

- 예비소집일, 시집 ‘어머니의 새벽’에서-

필자의 집안에도 새내기가 있다. 내일이 바로 손주의 유치원 입학식이다. 입학식장을 향해 가는 손주의 희망찬 발걸음은 마치 폭죽처럼 터지는 빛의 싸라기들이 비추어주듯 밝게 빛나리라. 아이의 엄마는 입학식을 준비하며 사뭇 설레는 모양이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아서 인지 사뭇 분주하게 움직인다. 손주의 입학식이 아니라 마치 딸아이가 입학을 한다는 착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오래전 첫딸을 키우던 나와 아내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랬다. 필자도 첫딸을 낳아 그야말로 애지중지 키웠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미술학원에 아이를 보냈다. 당시 그 미술학원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인정하는 유치원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서 참 많이 좋았다. 학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면서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했다. 한 자 한 자 한글을 익혀나가는 것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간판에 아는 글자가 나오면 아이는 큰 소리로 글자를 읽었다. 우리는 감탄했고, 환호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효도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이 갔다. 그렇게 내 자식들은 우리 부부에게 효도를 다하며 잘 자라주었다. 학원을 거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을 거듭해  진급하는 동안 늘 우리 부부의 기대를 채워주웠고 행복하게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엄마는 학부모회에 가입해 열심히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학교수업은 물론이고 사교육도 부지런히 시키려 애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먹고 잘 자고 마음껏 놀면서 자라게 했더라면 참 좋았겠다 싶은데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인줄 알았다.

요즈음 우리 손주도 많이 바쁘다. 수영도 해야 하고, 발레도 해야 하고, 한글도 익혀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좀 놀기도 해야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노는 시간이 그때 필자의 딸처럼 부족한 것만 같아 안쓰럽다.

어차피 모든 좋은 것을 다 하면서 클 수는 없는 게 우리들 삶이 아닌가? 선택할 것을 선택하면서도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면서 노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아이는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모든 것을 무한대로 받아들이고 끝없는 가능성을 가진다고 한다. 그때 그 그림을 그리는 주체는 엄마가 아니라 바로 아이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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