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10여만명이라는 종업원과 3초마다 한 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내는 매머드 기업인 미국의 포드 자동차회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회사도 시장 점유율 최하위로서 빈사상태에 빠져 들어간 시기가 있었다.

시골의 농가에서 태어나 농사일이 싫어 집을 뛰쳐나온 열여섯 살의 소년이 어느 기계 공장의 견습공으로부터 출발해서 이 거대한 회사를 이뤄놓은 것이다. 그러한 회사가 도산 직전에서 헤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포드는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대개 대단한 자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일수록 완고한 아집에 사로잡히기 쉬운 법이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도 잘해 왔다는 자신은 독주를 낳고 마침내는 시대의 변천이나 시장의 추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능력을 만능인 것으로 과신하거나 가거에 떨쳤던 재능으로 그보다 훨씬 앞서 가버린 현실을 재단하려 들 때 파국은 찾아오는 것이다.

인간이란 영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매하고 불안한 존재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이것저것 번민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종교에 귀의한다. 그런데 어떠한 종교든 한결같이 가르치는 바는 고민하지 않으려거든 아집을 버리라는 것이다. 즉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의 잘못을 느끼는 것이 다름 아닌 깨달음인 것이다.

아집은 무한지옥이다. 세상 모든 것이 틀려있고 미쳐 있다고 타인을 책하고 저주하고 매도하고 있는 사이에 악귀가 되어 완전히 고립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 보면 자기만이 옳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상대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보이는 것은 자기의 눈이 틀린 것이 아닌가. 자기가 색안경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이 모두 그 색과 같이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곤충을 보려고 차를 타고 싸다녀서는 수확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여유 있게 돌아봐야 보다 많은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걸어 다니면서 채집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수확을 올린다.”

어느 곤충학자의 이야기이다.

즉 인간이 자기중심으로 탐욕스럽게 움직이는 것보다 곤충과 일체가 될 때 보호색으로 숨어 있는 곤충도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그것도 종이 한 장의 차(差)에 지나지 않는 델리카트한 이 판단은 이렇게 우선 ‘나’를 버림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심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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