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87년, 곽광(藿光)은 한나라 무제로부터 대장군에 임명되어 병권을 움켜쥐었다. 얼마 후 무제가 죽고, 나이 어린 소제가 황제에 올랐다. 이 무렵 곽광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모조리 모반죄를 씌워 참수하였다.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후 자신의 뜻대로 선제(宣帝)를 새로운 황제로 세웠다.

선제에게는 본부인인 허황후가 있었다. 하지만 곽광은 허황후를 독살하고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었다. 이에 곽씨 일가는 권세가 더욱 튼튼해졌다. 법 위에 군림하며 사치스럽게 살았다.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했지만 신하들 중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그 무렵 무릉에 사는 서복(徐福)이라는 선비가 선제에게 상소를 올렸다.

“곽광이 폐하를 얕보고 권력을 전횡하고 있으니 참으로 탄복할 일입니다. 곽광은 탐욕스러운 자라 머지않아 반드시 반란을 획책할 것입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단단히 준비하시고 마음을 강하게 하셔야 합니다. 권력을 잡은 자가 사치하고 법을 우습게 알면 백성의 원망을 들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곽씨는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지금의 고비를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선제는 이 상소를 보자 혹시라도 곽광이 알까 두려워 모르는 체하고 내버려 두었다. 서복이 세 차례나 상소를 올렸으나 선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곽광이 죽고 말았다. 선제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친위 세력을 동원하였다. 위협을 느낀 곽씨 일가는 결국 반란을 획책하였으나 모조리 몰살되고 말았다.

선제가 공을 세운 자들에게 일일이 상을 내렸다. 그런데 서복에게는 아무런 상이 없었다. 이에 신하 중 하나가 서복의 공로를 글로 써서 선제에게 추천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어느 집을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떠날 때보니 마침 그 집 굴뚝이 나무 벽에 기대져 똑바로 세워져있고, 더구나 굴뚝 옆에 땔감이 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제라도 불이 날 것 같아서 주인에게 굴뚝을 밖으로 구부리고 땔감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으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과연 그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이 오르자 다행히도 이웃사람들이 도와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불에 데었지만 불을 꺼준 고마움에 소를 잡고 술을 내어 이웃사람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때 이웃사람이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불에 데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대접할 필요도 없었을 것 아니오. 정작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를 옮기라고 말한 사람에게는 고기 한 점도 대접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구려. 폐하, 서복은 모두가 침묵했을 때 수차례 상소를 올려 곽광의 반란을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서복만이 상이 없으니 폐하께서는 한번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선제가 서복을 떠올렸다. 이어 서복에게 낭관의 벼슬을 내리며 여러 신하들 앞에서 그를 칭찬하였다. 이는 ‘한서(漢書)’에 실린 이야기이다.

곡돌사신(曲突徙薪)이란 굴뚝을 구부리고 아궁이 근처의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즉 화근을 미리 방지한다는 의미이다. 이보다는 예방책을 말한 사람은 상을 못 받고 난리를 수습한 사람만이 상을 받는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현명한 군주는 유비무환이 우선이고, 어리석은 군주는 난리수습이 우선인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