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며칠 전, 오랜만에 모임 자리가 있었다. 졸업시즌이라 그런지 졸업식을 다녀온 이야기들이 주요 화제로 등장했다. 식사를 마치고 찻집으로 자리를 옮기자, 평소에 입이 무거우며 조용한 성격의 그녀가 말을 뱉었다.

“나, 졸혼 하기로 했어?”, “졸혼요? 그게 무엇인데요?” 말을 꺼낸 그녀에게로 우리는 일제히 시선을 집중하며 그녀 입에서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말 그대로 졸업이야. 25년간 결혼 관계를 졸업하기로 했어.”

세상에나 결혼을 졸업한다고, 결혼이 졸업이 된다고. 결혼을 졸업한다는 그 말은 그 순간 우리를 잠시 멈춤 상태로 만들며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졸업은 배움의 한 과정을 마침으로써 다음 과정을 예정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질적으로 다른 삶으로의 전환점을 공식적으로 부여해주는 가장 멋진 형식이 졸업식이다.

그런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했던 결혼 서약이었다. 정이 동나면 의리로 살아야 하는 것이 결혼의 정석이라는 생각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있음인데 ‘졸혼’이라니.

처음에 나는 ‘졸혼’이란 말을 그냥 말장난으로 알아들었다. 이혼을 다르게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혼을 좀 더 거부감 없이 상처 없이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그녀의 말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결혼 관계의 졸업으로서 서로의 동의 과정을 거쳐서 하는 ‘졸혼’이라는 것이다. 형식적인 부부관계는 유지하지만 각자의 영역을 침입하지 않으며 공간도 생활도 분리해서 각자 산다는 것이다.

‘졸혼’을 선언한 그녀가 우리들 중 가장 결혼을 일찍 했으며, 나이는 우리보다 위여서 우리들 중 큰언니로 통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편안해 보였으며 부부관계 역시 무난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우리들 중 누구 한 명도 ‘아니 왜 졸혼을 하려고 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결혼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였다.

25년을 해 온 일이라면 그 분야에서는 그녀가 전문가일 것이다. 우리들 중 누가 무엇을 그녀에게 조언할 수 있겠는가. ‘졸혼’이라는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그 결정을 번복했을까 싶었고, 그 밤들이 얼마나 길었을까 싶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녀의 결정은 우리 모두에게 와 닿았다.

일정 기간 동안 충분히 해냈던 부모라는 역할, 아내라는 역할, 남편이라는, 며느리라는 사위라는 역할을 이제 내려놓고 개인으로 돌아가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리고픈 행복을, 자율적으로 살아가고픈 욕구가 우리 모두에게는 있다. 그 욕구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사회가 ‘졸혼’에 동의할 만큼 성숙한 관계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우리들은 환영하며 축하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니가 상대방에게 했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당신도 고생 많았어요. 이제부터는 각자의 삶을 누리는 시간을 가져요, 우리 살아온 세월만큼 가장 친한 친구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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