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철 아동문학가

환갑이 지났으니 나도 노인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서는 아직 아닌듯하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가까이 서 있어도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내 스스로 경로석에 앉기도 그렇다.

간혹 지하철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있으면 “고놈 참 잘생겼다. 할아버지한테 와 볼래”하며 아이를 어르면 아내는 금방 얼굴을 찡그린다. “여보 당신이 왜 할아버지예요? 당신, 손자 있어요?” “아니 꼭 내 손자가 있어야 할아버지인가. 친구들 보면 다 할아버지니까 나도 할아버지라고 하는 거지. 당신은 할아버지가 싫어?” “당신은 참 이상해요. 그럼 나이 먹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아침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한다. 그러나 날이 추우면 가기가 싫다. 그렇다고 며칠 게으름을 피우면 몸무게가 금방 늘어나니 안 갈수도 없다. 내 딴에는 아직은 힘 좀 쓸 수 있다고 생각해 무거운 역기를 들려면 코치가 달려와 말린다. “아이고, 힘자랑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그리고 달기기도 좀 천천히 뛰세요. 그렇게 뛰다가는 젊은이도 다쳐요. 나이가 들면 운동도 천천히 하시는 것이 좋아요.” 이건 완전히 늙은이 취급이다. 하기야 코치 말을 안 듣고 운동을 하다가 몇 달간 고생한 기억이 있으니 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달 전 일이다. 지인의 간절한 권유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한 적이 있다. 처음에 거절한 것이면 끝까지 거절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데 잠시 내가 초심을 잃은 것 같다. 어쨌든 함께 하기로 결정을 하고 신청서를 냈다.

그런데 권유한 사람이 당초와는 다른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제안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뜩 났다. “이런 제안은 들어 주면 안 되지.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자 큰 호흡을 한 번하고는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저를 좋게 평가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지금 제안하신 일은 제가 들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모든 것을 접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지켜온 저의 도덕적 가치관을 이 일로 인해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거절로 인해 새로운 일은 당연이 멀리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그래 정말 잘했어.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데 그런 제안을 들어 줄 수 있겠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던 또 다른 내가 그렇게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아내 말처럼 나는 아직 할아버지가 되기는 좀 이른 것 같다. 세상을 보는 눈이며, 통찰능력이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집간 딸아이의 산달이 점점 더 가까워 오는데 예비 할아버지로써 큰일 났다. “이러다가 할아버지는 커녕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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