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을 오가는 벼슬아치와 양반님네들은 모두 관아가 있는 연풍에서 유숙했지만, 상민들은 대부분 고사리에서 잠을 잤다. 거드름을 피우는 양반들에게 굽실거리며 그들의 하대를 받는 것도 싫었지만, 한시라도 바쁘게 살아야 하는 장사꾼이나 짐꾼들에게는 고사리가 지리적으로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고사리 주막집에는 상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온갖 물건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들과 저마다 소간을 보기 위해 넘나드는 사람들로 고사리는 사시사철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가 온통 걸리는 육십 리 험한 새재길을 넘어 고사리에 당도하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길손들은 여기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일찍 사방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니 고사리에는 주막집이 많아도 성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풍원이 생각에는 그런 주막집에 나뭇짐을 해다가 팔면 어려운 살림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몇 살인고?”

나뭇짐을 지고 가는 풍원이를 보는 행인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녀석이 제 키보다도 한 길은 높게 지고 가는 나뭇짐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보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치 산 같은 나뭇짐이 저절로 둥둥 떠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눔 참 당차구먼!”

“여보게, 저것 좀 봐! 동발이 땅바닥에 닿는구먼!”

어린데다 키까지 작은 풍원이가 짐을 지면 지겟다리가 땅바닥에 끌리다시피 했다.

“얘야! 그 나뭇짐 내려 놓거라. 길마에 얹어줄 테니.”

마골산 수리골에서 고사리까지는 반나절 거리였다. 힘이 용솟음치는 장정도 짐을 지고 걷기에는 험한 길이었다. 그나마 새재와 만나는 영남대로까지도 거친 산길을 시오리는 걸어야 했다. 새재 큰길만 나오면 황소나 노새에 길마를 지워 끌고 가는 상단의 객주들이나 짐을 잔뜩 짊어진 보부상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또 영남의 세곡을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여름에는 폭 좁은 수레들이, 눈이 첩첩이 쌓여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겨울에는 발구를 매단 마소들이 쉴 사이 없이 넘나들었다. 그들은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된 채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가는 풍원이의 모습이 측은했던지, 상단의 장사꾼들이나 마소를 끌고 고개를 넘는 사람들은 종종 풍원이 나뭇짐을 길마에 실어주곤 했다.

풍원이가 고사리 주막집으로 나무장사를 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안면을 트고 지내는 장사꾼들과 주막집 주인들도 하나둘씩 늘어났다.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풍원이는 나무장사뿐만 아니라 돈이 될 만한 것이면 약초든 나물이든 가리지 않고 들고 고사리로 내려갔다.

풍원이가 그렇게 부지런을 피운 덕에 깨진 사금파리 하나 없던 집안에 살림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풍원이는 붙임성도 좋았고 장사 수완도 있었다.

“베드로 아저씨, 오늘부터 아저씨 숯가마에 땔나무는 제가 댈 터이니, 저를 품꾼으로 써주세요?”

“이 녀석아, 숯가마 주변에 지천으로 뒹구는 것이 땔나문데, 뭣 하러 품꾼을 쓰냐?”

“혹시 품꾼이 필요하시면 절 써주세요.”

“알았다. 필요하면 꼭 너를 부르마!”

베드로 아저씨의 약속을 받은 후에 풍원이는 다시 근처의 옹기가마로 달려갔다.

“요셉 아저씨, 옹기가마에 불 지필 나무는 제가 대 드릴게요.”

“그렇잖아도 가을 고추장 담을 시기라 가마 두 채를 모두 지펴야 하는 데 잘 됐구나. 품삯은 후하게 쳐줄 테니 뒤치다꺼리를 부탁하마.”

“품삯은 필요 없어요!”

“그럼 거저 도와주겠다는 게냐?”

“그건 아니고요, 품삯 대신 이가 빠지거나 조금 파치가 난 옹기나 소래기, 막사발을 주세요.”

“팔지도 못하는 그런 물건은 뭘 하려고 그러냐?”

“다 쓸 데가 있어요.”

풍원이는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었다.

풍원이가 옹기장이 요셉 아저씨에게 품삯 대신 파치가 난 기물을 달라고 한 것은 주막집에 싼값으로 팔려는 속셈이었다. 주막집에는 워낙에 많은 사람이 오가며 밥을 먹는 곳이라 성한 그릇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런 곳에 비싼 값을 치르고 온전한 그릇을 사다 놔야 빛도 나지 않을뿐더러, 금방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가 헌 그릇이 될 것이 뻔했다. 그러니 주막집 주인도 사용하는 데 문제만 없다면 싼값에 파치 그릇을 쓰는 것이 더 좋을 듯싶었다. 옹기나 소래기도 마찬가지였다. 새 물건은 처음 볼 때 잠깐이지, 며칠 지나 눈에 익으면 헌 그릇이나 그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숯쟁이 베드로 아저씨한테도 파치가 난 숯 부스러기를 달라고 할 참이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