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어. 그러니 언제나 죽는 것은 아랫것들뿐이지.”

“그런데 객주는 왜 죽였디야?”

“객주 놈들이 가로챈 쌀을 가지고 장난질 치다 그랬다는구먼.”

“어떻게?”

“나도 장사꾼이지만, 장사꾼놈들 장난질이 어디 한두 가지여? 한양 시전에서 싸전을 하던 객주놈인데 쌀에다 청치를 섞고, 모래를 섞어 팔다가 종당에는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쌀이 떨어졌다고 가게 문을 닫아걸었다는구먼.”

“왜 가게 문을 닫어?”

“왜 그랬겠어? 쌀을 사야하는데 문을 닫으면 쌀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쌀을 구하려고 돌아다니게 되고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걸 빌미로 값을 올려 폭리를 취하려고 그런 거지. 객주놈들이 담합해 이리에 문을 닫아걸자 쌀을 구할 수 없게 된 성난 사람들이 싸전 문을 때려 부수고 들어가 곡물을 약탈했고, 그 와중에 연풍에서 잡힌 의적이 주동자로 몰렸디야.”

“제놈들 죄를 감추려고 의적한테 다 덮어씌웠구먼.”

“그런 셈이지.”

“인심은 점점 흉흉해지고, 세상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지…….”

“어찌 되긴, 이래 살다 정 못살겠으면 콱 뒤져버리면 되지!”

“말이 쉽지, 그게 쉬운 일이냐?”

“그나저나 연풍에서 줄초상 나게 생겼구먼.”

“무슨 소리여?”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다고, 이번에 새재 관문을 막고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죄인들을 모조리 잡아들인다는구먼.”

“또 피바람이 불겠구먼!”

연풍은 백두대간의 험준한 준령이 지나고 영남과 한양을 이어주는 새재가 있어 위급할 때 도망치기도 쉬웠지만, 역으로 그만큼 단속도 엄했기 때문에 많은 죄수가 잡히는 곳이기도 했다.

“풍원아, 빨리 떠나자!”

“왜요?”

“여긴 위험해!”

“어디로 가게요?”

“어디로든 가야 해. 여기는 안 된다.”

주막집에서 장꾼들로부터 얻어들은 이야기로 풍원이 어머니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무슨 죄를 지기는 지었는가 보구먼.”

“……”

주막집 주모의 물음에 어머니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걱정말어! 정신없는 안노인과 힘없는 아녀자가 죄를 지었으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는가?”

“죄송해요.”

“그간 살펴보니 착하고 마음 씀씀이가 본심인 것 같아 오래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사정이 그러니 할 수 없지.”

“성님, 언젠가는 말씀 드릴 날이 오겠지요.”

“안 해도 돼! 도망 다니는 사람들 다 거기가 거기여. 장리쌀 먹고 못 갚아 고향을 뜬 사람, 관청 환곡 꾸어다먹고 못 갚아 도망친 사람들이 다여. 넉고 사는 일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어. 먹고살려고 하다 지은 죄는 죄도 아녀. 그러나저러나 새재는 넘을 생각도 말어!”

어디로 갈지를 몰라 허둥대는 풍원이 어머니에게 주모가 일러주었다. 어머니도 그동안 주막집에서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 새재는 넘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라에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질 적마다 관문을 통과하려면 군졸들의 엄중한 검문을 거쳐야만 했다. 역적죄를 짓고 도망치는 처지에 군졸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십중팔구는 관문에서 붙잡힐 것이 뻔했다. 그러면 곧바로 죽음뿐이었다.

“성님!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수리골로 가! 아무것도 없이 살라면, 그래도 산 뜯어먹고 사는 게 그중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저러나 엄동이라 겨울을 넘기려면 고생이 자심할 텐데…….”

주모가 사뭇 걱정스러워 했다.

결국, 연풍 주막집에서도 그해 겨울을 온전하게 보내지 못했다. 다시 풍원이네 가족들은 연풍에서 마골산 수리골로 도망치듯 숨어들었다. 그들이 숨어든 마골산 수리골은 연풍현에서도 산속 길을 삼십 여리나 들어간 새재와 계립령 사이의 깊은 산속이었다. 이마를 칠 듯 우뚝 솟은 연봉들이 줄줄이 늘어선 험준한 수리골은 더는 갈 곳 없는 유랑민들이 골골이 숨어 사는 최후의 생존 터였다. 고리채를 빌려 쓰고 갚지 못해 농토를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 관아의 세금이 밀린 사람, 장리쌀을 빌려 먹고 갚지 못한 사람, 양반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해코지하고 도망쳐서 유랑민이 된 사람들에게 수리골은 천혜의 은신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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