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 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임금을 빙자해 외척이 관직을 주무르고 있으니 벼슬아치들이 누구 눈치를 더 보겠소이까? 그러니 목사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럼 내가 지금 외척의 명을 전하고 있단 말이냐?”

“지금 임금이 외척의 세도에 묻혀 보이기나 합니까?”

“그러고도 진정 네놈이 살기를 바라더냐?”

“죽음이 두려워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선비의 도리가 아니오!”

정덕헌은 죽음도 불사하고 목사에게 작금의 실정을 말했다. 그러나 목사의 심중에는 정덕헌이 고하는 백성들의 실상은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금남문 괘서사건을 마무리시켜 흉흉한 민심을 가라앉히고, 이를 발판삼아 목사는 어떻게라도 중앙관직으로 진출해보겠다는 욕심뿐이었다.

“너희 둘은 예전부터 동문수학한 절친한 사이로 평소 나랏일에 불평불만이 많았던 바, 최선복이 거사 자금을 대고, 정덕헌은 양순한 백성들을 선동하여 거사를 도모하려 하였음이 분명하다. 백성으로서 하늘을 엎으려했으니 이것은 역모다. 너희들은 죽음으로서 임금께 지은 불충을 씻는 것이 마땅하다!”

충주목사는 정덕헌의 괘서 사건을 최선복과 연관시켜 역모로 몰아부쳤다. 두 사람이 절친한 사이라는 것과, 돈이 많은 최선복은 정덕헌에게 거사자금을 대고, 정덕헌은 괘서를 통해 고을민들을 선동하여, 청풍 읍성 내 한천장이 열리는 스무 나흗날을 기해 일시에 일어나 관아를 습격하여 옥문을 부수고 갇힌 죄수들을 탈옥시키는 것으로 구도가 잡혀 있었다. 역모로 몰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어설픈 각본이었지만, 두 사람은 목사가 작정하고 짜놓은 그물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려워 보였다.

외척의 세도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목사는 그들의 눈에 들어야만 출세를 할 수가 있었다. 그러려면 많은 재물을 약채로 바치거나, 큰 공을 세워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지방의 외직에서 한양의 내직으로 들어갈 수 있고, 내직에 들어가야만 더 높은 벼슬과 그를 내세워 더 많은 재물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목사의 의중은 거기에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풀려서라도 사건을 확대해야 했고, 그만큼 자신의 공은 커지는 셈이었다. 목사는 괘서의 내용에서 지방 관리들이 탐학하여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거나, 과중한 세금을 견디지 못하여 고향을 떠나는 백성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은 모조리 빼버리고 역모가 되는 부분만 부풀려 조정으로 장계를 올렸다.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 챈 최선복이 발버둥을 쳤지만, 이미 굳어진 각본을 바꿀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목숨은 목사의 도마 위에 올려져 토막 쳐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생선과 같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출세 길이 열리고 부귀를 누릴 수 있다면, 시골구석 백면서생이나 아전 한 목숨쯤 거두는 것은 파리 두들겨 잡기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정덕헌이 벽서를 통해 외척의 세도정치를 질타하고 동시에 고을민들을 깨치기 위해 금남루 정문에 붙였던 괘서는 충주목사가 꾸민 각본에 의해 두 사람을 역적으로 만들었다. 정덕헌과 최선복은 한양 의금부로 압송되었고, 종당에는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정덕헌의 아버지 정 진사는 역적 아들을 두었다는 자책으로 스스로 비상을 먹고 자결했고, 풍원이 할아버지 역시 사랑채 대들보에 목을 매 자진했다.

풍원이는 아버지 장례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풍원의 나이 겨우 열 살에 참수당한 아버지 시신을 한양에서 청풍까지 옮겨올 수도 없었다. 더구나 평소 주변의 인심을 잃은 데다, 임금을 배반한 역적이고 보니 위험을 무릅쓰고 선뜻 나서서 시신을 수습해줄 사람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인심을 탓하기보다는 그만큼 아버지 최선복의 생전 삶이 고약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집안의 대주인 남편과 아들을 졸지에 잃어버린 할머니 홍 씨는 그만 실심하여 정신이 들락날락했다.

외척의 세도가 시퍼렇던 시절에 외척을 질타하고, 임금을 능멸한 역적으로 몰린 처지이고 보니 하루아침에 최풍원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고향에서 위세를 부리며 아쉬울 것 없이 떵떵거리며 살던 풍원이네 집은 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아버지 최선복이 고을민들의 원성을 쌓아가며 그토록 악착같이 모았던 전답은 몽땅 관아로 몰수되었다. 늦가을이면 도조를 바치기 위해 인근에서 몰려든 소작인들로 북새통이 벌어졌던 넓디넓은 집도 사람들의 노략질로 폐허가 되었다.

떨어져나간 대문과 문짝, 기둥이 뽑혀 주저앉아버린 지붕, 어디 한 곳 성한 데 없이 부서진 집에서는 그동안 쌓여있던 고향 사람들의 원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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