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보영 수필가

바다는 푸르다 못해 쪽빛이다. 쪽빛 물결을 타고 색색의 커다란 풍선들이 일렁인다. 태왁이다. 물살을 가르며 검은 잠수복의 여인들이 몸을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네들은 태왁 하나에 의지하여 물속을 넘나든다. 숨비소리는 한길두길 깊고 푸른 물속을 자맥질하며 살아가는 좀녀(해녀)들이 물질하다 물 밖으로 몸을 솟구치면서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거친 소리다. 그 소리는 골갱이로 밭을 일구다가도 물때가 되면 불덕에 걸어 두었던 태왁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야만 했다는 그녀들의 삶의 소리다. 물질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바다는 텃밭이고 숨비소리는 휘파람소리이기 전에 너무나도 절실한 삶의 소리다.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이 땅은 애초부터 검푸른 돌과 푸른바다를 가슴에 안고 태어났다. 척박한 이 땅에 살아가는 그들 역시 이곳의 돌과 바다를 가슴에 품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게다. 밭이랑에 쌓여져 있는 돌무더기와 돌담들은 작은 뙈기 밭 하나를 일구느라 손끝에 피멍이 드는 고통의 순간들이 있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 옛날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던 여인들은 삶이 너무 고달파 여자로 태어나느니 쇠로 태어나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니 이곳 제주 여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그런 속설이 생겨났을까.

바람이 분다. 갈대밭을 뒤흔들며 불어댄다. 돌담의 크고 작은 구멍 사이로 끊임없이 바람이 드나든다. 바람의 숨결은 그 옛날 거친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이곳 어멍들이 토해내는 생존의 무게를, 물질을 업으로 여기며 살아내느라 참았던 숨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픈 속내를 받아 안고 들녘을 누빈다.

숨비소리는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다. 그 소리가 반복됨에 따라 태왁에 매달아 놓은 망사리 속엔 바다 속의 기름진 것들로 채워질 수 있음이다. 숨비소리를 통해 그들의 어린 것들은 자랐을 것이고 내일을 향한 소박한 꿈들이 이루어지는 근간이 되었을 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푸른바다를 넘나들며 물질하는 여인들의 어기찬 모습 속에서 삶이 빚어내는 소리를 듣는다.

세상은 온통 수많은 숨비소리로 가득하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일터를 향해 가느라 새벽을 뒤흔드는 발걸음소리. 재래시장 한켠에 생존을 위한 좌판을 벌려놓고 목청을 돋우며 토해내는 시끌벅적한 소리들, 갈바람이 불어대는 스산한 거리에서 가위소리를 반주삼아 부르는 각설이들의 절규에 가까운 노래 소리. 생산현장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기계소리. 밤을 밝혀가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이 컴퓨터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세상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들려오는 크고 작은 수많은 소리들이 존재한다.

내 기억의 한 자락을 채우고 있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프면서도 정다운 소리가 있다. 아버지가 남폿불 아래 앉아 줄판 위에 원지를 놓고 철필로 글씨를 써 내려갈 때 나던 소리와, 어머니가 손재봉틀을 돌릴 때면 노루발 밑을 스치는 갖가지 옷감들에서 나던 소리다. 어린 시절 밤을 낮 삼아 손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손끝을 따라 갖가지 천에서 나는 소리들을 노랫가락처럼 들으며 자랐다. 그 소리들은 어떤 천으로 옷을 짓느냐에 따라 달랐다. 양단이나 모본단 등의 비단천일 때는 사각사각 부드러운 소리를 내었고, 무명옷이나 삼베옷을 지을 때면 유난히 서걱서걱 대는 둔탁한 소리가 귓전을 울리곤 했다. 그 소리는 가장의 박봉으로는 여섯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기엔 턱없이 모자라 안간힘하며 토해내는 한 여인의 어기찬 숨비소리였고, 윈지 위에 글씨를 새길 때 나던 사각거리는 소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가장의 숨비소리였다. 이 소리들은 오늘의 내 피붙이들을 성장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아름다운 소리다.

내 삶의 뒷면을 돌아본다. 설익은 풋과일처럼 시고 떫으면서도 순수의 열정으로 뜨거웠던 때가 내 인생의 일 막이였다면 땀내로 뒤범벅이 되여 삶의 현장을 넘나들었던 때는 한 이막쯤에 해당 하리라. 인생 이막을 살아내는 동안 가슴 속에서 뜨겁게 차올랐던 꿈의 크기가 날로 작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뒤 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산다는 것은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당 할 수 없는 일들로 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어금니를 깨물며 버텨 온 나날들이 아니었나싶다. 지난한 삶을 살아내느라 자맥질하며 숨을 고르느라 가슴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던 세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당 할 수 없는 일들로 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어금니를 깨물며 버텨낸 순간들.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하게 맞서려 했던 순간들. 이 또한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위해 토해낸 아름다운 숨비소리였던 것을.

어느 순간 지구상에서 이 소리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거친 바다를 누비며 토해내는 좀녀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소리도,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소리도, 내 어릴 적 들었던 손재봉틀 밑을 지나갈 때 나던 소리들. 이들 모두를 들을 수 없다면 지구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숨비소리는 존재의 근원이다. 이 소리들로 해 삶의 견고한 토대가 놓여 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빚어지는 소리는 아름답다. 삶의 길목에서 들려오는 숨비소리를 통해 세상이 빛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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