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3년 전 부터, 나는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북멘토’라는 이름의 그 일은 나에게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한 권의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한 사람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는 일은 매우 유익하다.

사람들과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누군가가 내게 물어오기도 한다.

“당신의 인생에서 한 권의 책이 있었나요?”

“혹시 당신의 인생을 바꾼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어떤 책 인가요 ?”

독서는 순간순간마다 나를 흔들어 놓은 일이기에 인생의 책을 만나는 일은 하나의 사건임은 분명하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한 책이라, 생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나에게 독서의 재미를 선물한 사람이 있었다. 작은언니였다. 언니는 나보다 6살이 많았다. 내가 초등학생이었고, 언니는 고등학생이었다. 생업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은 작은 언니의 몫이었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일도 언니의 일이었기에 나는 엄마보다 언니랑 정서적으로 가까웠다. 언니는 저녁밥을 하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나를 아궁이 앞에 앉게 했다. 타닥타닥 타는 불의 온도를 조절하며 언니는 내게 언니가 읽은 소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인공들의 기구한 인생사나 엇갈리는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잠들기 전까지 언니는 자신이 읽은 책들을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주었다. 나는 언니의 들뜬 감정의 파도를 같이 경험하며 책 속의 주인공 마음속을 같이 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가 서울로 떠나고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 나는 활자를 통해 ‘제인에어’를 읽었다. 책으로 읽은 ‘제인에어’는 내가 귀로 들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간접체험이 직접체험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느낌은 언니가 이야기로 들려준 소설들을 찾아 읽게 했다. ‘안나카레리나’, ‘폭풍의 언덕’, ‘쟝발장’, ‘죄와 벌’, ‘목걸이’ 등등의 책은 나의 감성을 점령하기에 충분했다. 책은 언니만큼 따뜻했으며 그리움의 시간을 견디게 했다.

책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가보지 못한 곳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데미안’이었고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였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수록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도서관과 서점은 내게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나는 먼저 책을 샀다. 책방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그 수많은 책 중 읽고 싶은 책을 만나고 그 책을 사들고 돌아오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 사온 책을 읽은 그 밤은 깊고도 아름다웠다.

책은 내가 그어놓은 선들을 지우는 일을 도와주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더 굳건하게 지탱하게 해주기도 했다. 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 그것도 몇 백 년 전에도 살았다는 것은 내게 큰 위안이 됐으며, 나를 감동하게 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서로를 맞대는 느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으로, 든든한 연결감으로 나를 좀 더 먼 곳으로 안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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