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는가? 난, 글줄이라도 깨쳐 아전이라도 해먹음서 사는 지금이 너무 좋우이.”

“자네 사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 원성은 너무 사지 말게!”

정덕헌은 학문을 통해 깨친 이치를 세상에 펼쳐 백성을 이롭게 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관직에 나가려 했으나 시절이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깟 무지랭이 놈들! 지놈들이 게으른 것은 모르고 남 탓만 한다니께. 그러니 맨날 못 사는 거여!”

최선복은 고을민들의 곤궁한 살림에는 관심도 없었다.

동문수학한 사이지만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최선복은 문리가 채 트이기도 전에 아버지 대를 이어 관아 아전으로 들어가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 좇는 빠꼼이로 살아왔다. 그런 그가 아전을 하며 처음부터 배운 일은 힘없는 고을민들의 등을 치는 일이었다. 최선복의 탐학은 끝이 없었다. 그런 탐학이 자신의 목숨을 걷어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을에서 신망을 받던 아버지와는 달리 최선복은 무슨 욕심이 그렇게도 많았던지 인근에서 원성이 끊이지를 않았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풍족한 재물을 물려받았음에도 베풀기는커녕 아흔아홉 마지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 마지기를 채우기 위해 남의 논 한 마지기를 빼앗는 그런 위인이 최선복이었다. 그러니 남의 원성을 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사람들 입에 자꾸 오르내리면 뭐가 좋겠는가? 더구나 그게 좋은 소리도 아니고…….”

정덕헌이 말꼬리를 흐린 것은 서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온갖 악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렇다고 제깟 것들이 어쩔 텐가? 마소 같은 놈들이!”

최선복은 주의를 하라는 정덕헌의 말에 시늉치도 않았다.

본디 욕심은 많았지만, 최선복의 성향으로 보아 나랏님을 비방하는 그런 일에 관여할 만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땅 마지기에서 나오는 소작이나 받으며 사는 것을 인생의 제일 큰 낙으로 삼는 시골 아전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외척의 세도정치를 질타하는 팔영루의 괘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개가 들어도 콧방귀를 뀔 일이었다. 세상일이라고는 손바닥만한 청풍관아의 일도 버거운 최선복이었다. 그런 그에게 역모라는 무거운 올가미가 씌워진 것은 온갖 토색질에 진저리를 대던 고을민들 중 누군가가 고변한 사건이 빌미가 되었다. 임금을 능가하는 실권을 쥐고 있던 안동 김 씨 권문세족을 질타하는 괘서 사건에 연루되었으니, 목이 열 개라도 최선복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최선복은 자신을 심문하는 충주목사에게 괘서 사건과의 무관함을 역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목사의 머릿속에는 역모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는고?”

“동문수학한 사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사옵니까요?”

“이놈! 내가 묻는 것이니라. 죄인은 답만 하면 된다!”

“…….”

“네놈들은 평소 조정에 반감을 품고 수시로 만났다는 데 그것이 사실이더냐? 그것은 역모니라! 역모!”

“역모라니요!”

최선복이 역모라는 말에 기겁을 했다.

“조정에 대해 가타부타 논의를 했다면, 그것이 역모가 아니고 뭐란 말이더냐?”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사옵니다!”

최선복이 온몸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오랏줄로 단단하게 묶여 있어 엉덩이만 들썩들썩했다.

“아무리 발뺌해도 소용없다! 이미 증거가 다 있느니라.”

“무슨 증거가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언젠가 정덕헌을 만난 자리에서 김 씨가 왕족이라며, 임금을 능멸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없는가?”

“지는 말렸습니다요!”

“있는가 없는가만 물었느니라!”

“있사옵니다요.”

“그것이 역모니라!”

충주목사는 단정적으로 최선복을 역모로 몰아가고 있었다. 목사 무릎 아래 엎드려 죄상을 받아 적고 있는 병방은 벼루 먹물은 묻히지도 않은 채 마른 붓만 열심히 놀리며 글씨 쓰는 시늉을 했다. 최선복은 목사에 의해 이미 돌아오지 못할 저승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너는 고을 아전으로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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