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피해액을 경신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구제역 공포가 축산업계를 뒤덮고 있다. 충북 보은 젖소에 이어 전북 정읍 한우에도 7일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났다. 정부가 긴급히 6일 오후 6시부터 30시간 동안 소·돼지 농가와 차량 등에 대해 일시 이동중지명령을 내렸지만 전국 확산이 우려된다.

구제역이란 발굽이 2개인 소·돼지·염소·사슴·낙타 등 우제류 동물에게서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공기로도 쉽게 전파될 만큼 전염력이 강하고, 치사율도 5∼55%에 달해 여차하면 피해가 축산 기반을 흔들 정도로 커진다. 특히 구제역 발생 농가의 소와 돼지는 AI와 마찬가지로 살처분되고, 우유·고기 등의 가공식품까지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국가경제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최악의 구제역 사태를 빚었던 2010년 11월부터 2011년 4월까지의 경우 347만9천962마리의 소와 돼지, 염소, 사슴 등이 살처분됐다. 살처분 보상금과 소독·방역비용, 농가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총 2조7천383억원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 AI도 유행했는데 가금류 647만3천여마리가 살처분돼 보상금으로 822억원이 지급됐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 초까지 소와 돼지, 닭, 오리 등 가축 살처분 보상금으로 피해농가에 지급한 예산만 1조8천50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 11월 중순 발생한 AI는 전국적으로 확산돼 1월 초 현재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1억6천525만 마리)의 18.3%인 3천33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2천300억원을 웃돈다.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AI와 구제역이 연중행사처럼 발생하면서 우리 방역 체계에 대한 재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AI는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해 사태를 키우더니, 구제역은 안일한 백신 접종 관리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소는 97.5%, 돼지는 75.5%의 백신 항체 형성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이번 구제역은 없어야 옳다. 하지만 실제 농가 상황은 전혀 달랐다. 보은 젖소 농가의 항체 형성률은 19%, 정읍 한우 농가는 5%에 그쳤다. 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방역이 잘 됐다며 안심하라니 말문이 막힌다.

허술한 검사와 집계 방식으로 낸 엉터리 통계를 믿는 정부도 한심하지만 농가의 도덕적 해이도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부 축산농가는 비용 부담과 우유와 질 좋은 고기 생산에 악영향을 준다며 백신 접종을 기피한다고 한다. 농가의 백신 관리 소홀도 부실 접종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접종 시스템의 개선과 농민 교육 강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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