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과

축구 경기에서 전반전보다는 후반전이 중요하고, 후반전보다는 연장전이 중요하며, 연장전보다는 패널티킥이 중요하다.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과정이나 수단이 바람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임기 말 지지도는 56%로 임기 동안보다 떠날 때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이에 레임덕 없이 떠나는 오바마의 뒷모습은 아름답고, 트럼프의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이 있을 때마다 회자한다.

2010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유언에서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습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을 남기고, 평생 무소유의 삶을 죽음 앞에서도 보여주시면서 ‘번거롭고 부질없는 장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도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고 제자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고 있다. 법정 스님보다 1년 앞서 하늘나라로 가신 김수환 추기경은 90년대 초 천주교계에 ‘내 탓이오!’ 운동을 추진하면서 함께하는 세상을 생각하도록 하였다. 추기경은 죽음에 앞서 불필요한 수명 연장을 반대하고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서 각막을 기증하시고 “사랑하라, 고맙습니다”라는 간단한 말씀을 남기셨다. 그의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처럼 후세에 존경받는 사람은 태어나서 세상에 나올 때보다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세상이 각박한 탓인지 우리 사회에 떠나는 모습,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떠나는 것을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누기보다 더 많이 가지고, 교훈을 주기보다 숨기고자 하고 있다.

최근 대권 도전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가 부족하기보다는 정치권에 실망한다면서 남 탓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탄핵을 거대한 음모라고 하면서 ‘내 탓이오’가 아니라 최순실의 탓이고, 수석의 탓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단지 의심받을 짓을 한 것밖에는 없다고 한다. 정치인에게는 형법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맨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마무리 모습도 아름답지 못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떠나가는 권력의 모습을 보면 아름다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들은 하나같이 당당함보다는 비열함을, 사실보다는 거짓을, 정당한 절차보다는 꼼수로, 국가와 사회보다는 개인의 이기심만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그늘에서 떠나가는 모습이 수의 속에 감추어진 쇠고랑처럼 차가운데 이들의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한 것이 쓸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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