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서문지는 성벽이 끊어진 부분에서 약간 어긋나 있었다. 봉서사 쪽에서 보면 약간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고 반대쪽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이른바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치는 작은 겹성)의 모양이다. 청주 정북토성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길에 내려가서 성을 올려다보니 원형이 그대로 남아 높이가 약 5~7m쯤 되어 보였다. 아마도 이곳에 문이 있었을 것이다. 문헌에는 성의 높이가 능선 부분은 1m 정도, 서문지 부분은 3m 내외라고 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능선 부분은 1~3m 정도, 서문지 부분은 5~7m 정도로 보였다. 성의 너비는 아랫부분은 약 300cm, 윗부분은 150cm 정도로 짐작되었다. 성의 절개지 부분을 보니 색깔 고운 적토인데다가 잔돌 하나 섞이지 않은 깨끗한 흙이다.

서문지 부근에 평평한 건물지가 보였다. 봉서사 쪽으로는 계단식으로 널찍하고 아직도 뚜렷하게 건물의 모양이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의 내부에 민가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 계단식으로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와편이나 토기편이 발견됐다기에 스틱으로 파헤쳐 보았으나 풀과 낙엽이 많아 찾을 수 없었다. 더 파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훼손될 것 같아 참았다. 이곳에서 불에 탄 곡식도 발견되었다는데 전문가도 아닌 내 눈으로 찾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서문지라고 추정되는 곳 가까이 건물지에서 기와편 몇 조각을 찾았다. 서문지는 절개면을 관리하지 않아 황토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어 안타까웠다.

정상은 올라갈수록 성벽이 가팔랐다. 정상에 오르니 뚜렷하지는 않지만 장대 같기도 하고 보루 같기도 한데 타원형으로 쌓은 윤곽이 보였다. 봉우리를 둘러싸고 길이는 150m, 너비는 30m 내외였다. 이곳은 한산면 소재지 쪽으로 경사가 매우 급해서 자연 성벽이 되었다. 그 위에 토축했는데 아직도 윤곽이 뚜렷하다. 여기도 중장비가 훼손한 흔적이 있다. 1500년 비바람을 견딘 성벽이 오늘에 이르러 훼손된 걸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문화재는 한 번 무너지면 복원한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일이다.

정상에는 건지산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乾止山亭’이라는 현판의 글자 중에 ‘止’자가 건지산의 ‘芝’와 다르다. 문헌에 ‘芝’로 나오는데 현판을 ‘止’로 쓴 연유가 궁금했다. 정자 아래 건지산성에 대한 설명을 나무판에 적어 놓았는데 건지산성이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저항 거점인 주류성이라고 되어 있다. 임존성의 경우처럼 ‘거점지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정확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역사를 자기 눈으로만 보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운주산성에 가면 최후의 거점이 바로 거기라고 한다. 운주산성만 가 보았을 때는 거기가 바로 최후의 저항지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믿었다. 역사는 해석이 중요하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래 설계가 달라진다. 나의 시선으로만 해석하면 무서운 결과가 나온다. 백제사나 고구려사, 가야의 역사가 땅에 묻힌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안내판 제목은 건지산성인데 문헌서원, 봉서사, 한산면 소재지에 대한 설명이 더 많다. 건지산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 제공이 없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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