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얼마 뒤면 우리 집안에 경사가 있다. 외손녀의 첫 번째 졸업식이 있다. 어린이집 졸업식이다. 애 엄마는 벌써부터 졸업식에 참석할 마음에 들떠 있는 것 같다. 당사자인 손녀보다 더 들떠 있는 것은 그 엄마이고, 그 곁을 지키는 할머니인 것 같다. 하기는 필자 역시 졸업식이 기대되기는 마찬가지다. 손녀가 태어나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얼마나 가슴 설레고 순간순간 감격했었는지? 그 울음소리가 왜 그렇게 아름답게만 느껴졌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배밀이를 할 때 온 가족이 얼마나 환호했는지? 그 손녀를 보면서 필자는 한 편의 시를 남겼다.

아가를 보려면/배밀이하는 아가의 웃는 얼굴/자세히 보려면//엎드려야 한다/서있거나 앉아서/내려다보지 말고/낮추어 바닥에 얼굴을 대야한다//숨 고르고 바라보면/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앞에서 까르르 웃고 계신 하나님//아가의 얼굴을 보려거든/바닥에 온 몸을 맡기고/고개들어 올려 보아라//환하게 빛나며/손 내미는 하늘//아가 얼굴을 제대로 모시려거든/더 낮은 자세로 /올려다 보아라//-아가얼굴 전문 -

필자가 첫 딸을 낳아 아빠가 된 것이 엊그제만 같은데 그 딸이 자라서 시집을 가고 또 그 딸의 딸아이가 태어나 이제 어린이집을 졸업한다는 것이 그저 꿈결처럼 느껴진다. 처음으로 딸을 품에 안고 얼마나 스스로를 대견해 하고 자랑삼았는지 모른다. 여기 저기 다니며 내가 딸을 낳았다고, 아빠가 되었다고 떠들며 다니곤 했다. 그리고 내 딸 역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웬 낯선 사내를 가족에게 소개시켜주었다. 그러더니 이제 손녀의 첫 번째 졸업식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나의 딸도 사위와 함께 첫 아이의 졸업식을 지켜보며 흥분하리라.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에 입학을 하고 또 졸업을 하기까지 그 아이가 잘 자라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뒷바라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리라. 그것이 행복이니까. 필자는 가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시다고. 젊은 시절에는 자식을 키워가는 행복감을 주시더니 이제 늙으막에는 다시 그 애의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하며 기쁨을 주신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필자 역시 평범한 부모의 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내 자식만은 남들 못지 않게 잘 키우고 싶었다. 늘 생활비에 쪼들리면서도 과도하게 가르치려고 애쓰고, 잘 먹이고 잘 입혀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냥 남들 하는 만큼만 해도 되었을텐데… 욕심을 그만 부려도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한다. 그런데도 다시 손녀를 키우는 요즘 필자는 또 다른 욕심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우리 손녀는 똑똑하다. 누구보다 현명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공부를 무척 잘할 것 같고, 운동도 잘할 것 같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도 동화책을 금방 읽을 것만 같고, 발레면 발레, 수영이면 수영, 모든 것을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잘할 것만 같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해도 아이에 대한 필자의 끝없는 욕심은 졸업이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제는 옆도 보고 앞도 보면서 지나치게 익애(溺愛)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겠노라고 다짐도 해본다.    

아마 졸업식날이면 필자는 틀림없이 손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리라.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축하한다고 소근대며… 그러고서 눈은 어느새 유치원에 닿아 있으리라. 그리고 멋진 유치원생이 되어 있는 손녀의 모습을 미리 보고 있으리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