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루에 괘서가 나붙다

“마아님! 풍원이 도련님이 똥독에 빠졌어유!”

아침부터 몸종 순득이가 안채 뒤쪽에서 부리나케 달려 나오며 호들갑을 떨었다.

“뭐시여? 아이구! 우리 풍원아!”

할머니 홍 씨가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로 단숨에 안채를 돌아 뒷간으로 달려갔다.

순득이가 그 뒤를 따랐다.

“이년아! 아를 어떻게 봤길래.”

“…….”

순득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서서 오돌오돌 떨기만 하고, 할머니 홍 씨는 뒷간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풍원이의 바지 자락을 연방 손으로 훑어 내렸다.

“둑간 구신이 노하신 거여!”

할머니 홍 씨는 바짓자락에 뭉게뭉게 붙은 똥을 손으로 털어내며, 뒷간 귀신의 노여움을 받아 풍원이가 똥독에 빠졌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대를 이을 고추라고는 달랑 풍원이 혼자였다. 그런 귀한 손자가 똥독에 빠졌으니 할머니 홍 씨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겠는가. 더구나 ‘누구누구네 집 아이가 물에 빠져죽었다더라, 뒷간에 빠져 죽었다’더라는 끔찍한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던 터였다.

“이년아! 뭘 멀건하게 서 있는 게여? 냉큼 가서 양밥하게 쌀 담그지 않구!”

“예- 예, 그란디 떡쌀은 얼매나?”

“으이그 맹추 같은 년, 넉넉하게 담궈! 그래야 둑간귀신 노여움이 풀릴 것 아녀?”

할머니 홍 씨는 똥떡을 하느라 종일 디딜방앗간과 부엌을 분주하게 돌아쳤다. 그리고는 뒷간 안에 떡시루와 촛불, 정화수를 올린 상을 차렸다.

“둑간 구신님, 즈이 정성 자시고…… 모쪼록 노여움 푸시고…… 지발지발…… 우리 풍원이 오뉴월 가죽나무 맹키루 탈없이 쑤우-쑥 크게 해주시옵소서.”

뒷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빌며 연방 머리를 조아렸다.

할머니 홍 씨는 비는 것을 엄청 하게도 좋아하셨다. 툭탁하면 빌었다. 그저 무슨 일만 생기면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또 빌었다. 할머니는 풍원이 생일날에도 꼭두새벽부터 뚱골 박샘으로 달려갔다. 남들이 아침밥을 짓기 위해 물을 길러와 후정거리기 전 깨끗한 샘물에 먼저 빌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풍원이가 무사하게 자랄 것이란 철석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는 아침상에서 매번 이 말을 빼놓지 않고 말하곤 했다.

“너를 낳았던 날은 어찌나 추웠던지 박샘에 가 쌀을 씻고 물을 길어 오는 데 손이 동우에 쩍쩍 달러 붙는 거여. 그래도 아들 낳았다고 얼매나 좋았던지 추운지도 몰랐지. 그렇게 손이 동우에 쩌억-쩍 달라붙는 손을 떼어가며 집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데, 멀리 금수산에서 동이 마악 터오는 데 그날처럼 환한 해는 본적이 없어!”

풍원이는 어사 박문수가 태어난 청풍 도화동이 고향이었다. 북진나루에서 동쪽으로 두서너 마장쯤 떨어진 도화동은 봄이면 흐드러지게 만발하는 복사꽃으로 온 마을이 분홍색으로 뒤덮였다. 마을 앞으로는 옥 같이 푸른 강물이 흐르고, 강가 절벽에는 기괴한 수석들이 온갖 봄꽃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떼어다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도화동이었다.

풍원이네 집안은 청풍의 뿌리 깊은 토호세력으로 한 해에 삼백 석을 먹는 소문난 알부자였다. 청풍은 물론 인근 수산의 일부 전답까지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 최선복은 할아버지에 이어 청풍관아에 속한 아전이었다. 대물림으로 내려온 아전 노릇을 하며 전답을 긁어모은 아버지는 곳간마다 그득한 곡식 섬을 세는 것과 땅마지기 늘려가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살던 사람이었다. 나락을 거둬들이는 늦가을이 되면 도조를 바치려고 인근 마을에서 온 소작인들로 넓은 행랑 마당은 장마당처럼 북적거렸다. 아버지는 긴 장죽을 입에 물고 사람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웠다. 영남이나 호남처럼 벌이 넓은 곡창지대에서는 삼백섬지기가 흔할지 몰라도, 온통 산과 밭뿐인 깊은 산중 청풍에서 삼백 석이면 엄청난 부자였다. 이곳에서 태어난 계집아이가 쌀 서 말을 다 먹지 못하고 시집을 간다고 하는 오지이고 보면 풍원이네 집안이 얼마나 떵떵거렸는지 알만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시골 사대부라고 빈정거렸다.

아쉬운 것 하나 없이 풍족하기만 했던 풍원이네 집안이, 어느 날 갑자기 장마철 멍석물에 휘말리듯 순식간에 몰락하게 된 것은 청풍관아에 붙여진 괘서 사건에 아버지 최선복이 연루되어 관아에 잡혀가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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