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풍원은 소와 나귀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봉화수는 그런 최풍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름을 갓 넘겨 이울어져 가는 달이었지만, 달빛은 멀리 강 건너 한벽루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빛났다. 환한 달빛이 호수처럼 잔잔한 북진나루 강물 위로 보석처럼 반짝이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손을 봤겠지?”

“저승길 반은 구경했을 겁니다, 행수 어르신!”

“어지간하면 함께 하려 했는데…….”

최풍원은 송만중의 일이 못내 심사에 걸리는 눈치였다.

“그렇게까지 할 게 뭐 있겠는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도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네. 우리 같은 상것들이 살아남으려면 힘을 합치지 않으면 마캉 죽고 말어. 냇물에 피라미가 작아도 큰 물고기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은 떼로 몰려 살기 때문이여. 양반님네들이 두어 자가 넘는 잉어라면 우리 장사치들은 갓난쟁이 손가락만두 못한 피라미 신세라고. 돈 좀 조금 벌었다고 날뛰다간 어떤 놈 아가리에 먹히는지도 모르고 당하기 십상이지. 양반들이 우릴 그나따나 푸대접이라도 하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돈 때문이지, 지가 잘나서라고 자만하면 큰 착각이지. 우리 수중에 가진 돈이 없어지거나 약한 꼴을 보이면 그들은 우릴 떨어진 짚신처럼 단박에 버릴 무치배들이여.”

최풍원은 누구보다도 양반들의 속성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겉모습은 낙락장송에 앉아 긴 목을 빼고 있는 학처럼 고고한 듯 보였지만, 실상을 파고들면 뒷간보다도 더한 똥구덩이 속이 양반들 세상이었다.

“행수 어른, 송만중이 난장 트는 데 방해를 하지는 않을까요?”

“질기기가 고래 심줄같은 놈이니 능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그놈이 이 일로 생각을 고쳐먹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해코지를 할 걸세. 그땐 저 스스로를 해치는 곰 창날 받기가 될 걸세!”

“그렇게 혼줄이 났는 데도요?”

“평생 장바닥에서 굴러먹은 질긴 목숨이여. 설령 목숨을 빼앗긴다 하더라도 이문이 생기는 일이라면 무덤 속에서라도 달려 나올 놈이 그놈이여!”

최풍원이 살아온 삶 또한 송만중처럼 그러했다. 장사를 위해서라면 수십 리 산길이 아니라, 수백 리 밤길이라도 찾아갔던 그였다. 이문이 남는 일이라면 잠자는 호랑이 수염이라도 뽑아올 정도로 위험천만한 일을 수없이 헤치며 이제껏 살아왔다.

“사람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가 있네. 강압적으로 눌러 굴복시키는 것과, 자신의 뜻을 밝히고 설득해서 내 편을 만드는 방법이지. 송만중이처럼 닳고 닳은 질긴 인생은 후자가 적격일세.”

“그럼 오늘 제가 한 일은 잘못됐다는 말씀인지요?”

봉화수는 기껏 일을 시켜놓고 치사는커녕 오히려 책망하는 듯한 최풍원의 어투에 심사가 편치 않았다.

“왜, 기분 상했는가?”

최풍원이 봉화수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아, 아닙니다요!”

당황한 봉화수가 말을 더듬었다.

“자넨 오늘 일로 송만중이가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예!”

“두고 보면 알 일이겠지만, 송만중은 내게 다시 맞서 올 걸세. 그때를 항시 염두해 둬야 할 걸세.”

봉화수는 자신만만했지만, 최풍원은 송만중이 북진장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에-, 행수 어르신.”

봉화수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자네 올해 몇이라 했지?”

“스물 둘입니다.”

“스물 둘이라, 나는 그 나이에 뭘 했었던고? 사람들은 말하기 좋아서 지난 세월을 꿈같다고 하지만 그땐 죽고 싶어도 죽지도 못했던 구차한 시절이었어.”

최풍원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저 달 좀 보게!”

“예에?”

최풍원의 갑작스러운 달 타령에 봉화수가 영문을 모르고 되물었다.

“저 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데 사람만 자꾸 변해.”

“…….”

느닷없는 최풍원의 뜻 모를 말에 봉화수는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눈물뿐인 세월이었어.”

최풍원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달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달빛이 하늘에서 백옥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북진여각 지붕 위에도 구석구석 달빛이 내리고 있었다. 최풍원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쏟아지는 달빛이 눈에 부신지 최풍원이 잠시 도리질을 쳤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달조차 한가하게 쳐다볼 여유 없이 앞만 바라보며 질주해온 고단한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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