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저것도 무조건 반대만 하면 어쩌겠다는 겐가?”

“미끼상품이고 나발이고, 난 내 물건을 거저 내놓을 수 없소!”

“송 객주, 이건 우리 도중 공동의 생사문제요!”

최풍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속에는 강한 질책의 어조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무리 도중 뜻이라도 손해를 볼 일이 뻔한데 따를 수 없소!”

“그럼 어쩌자는 겐가?”

“나 같으면 이런 식으로 도중을 끌고 가지는 않겠소!”

“도중회와 나를 불신하는 겐가?”

순간 최풍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일단 선출이 되면 도중회의 대행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객주들 집단인 도중회는 대행수의 능력 여하에 따라 모든 객주들의 재산이 불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었다. 때문에 대행수는 도원들 간에 기강을 문란하게 하거나 도중에 손실을 끼치는 회원이 발생하면 진퇴를 명령하고 상벌을 행하는 실권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는 자체적으로 치죄를 행하고 형벌까지 내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행수를 불신한다는 것은 도중을 떠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송 객주가 밑진 건 도중회에서 상론해 벌충해 주겠소!”

송만중을 달래는 최풍원의 표정에서 화를 삭이려고 애쓰는 흔적이 역력했다. 생사고락은 물론 이해관계도 함께 하는 공동체인 도중회에서 개인 손실을 메워주겠다는 것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밑지는 장사로 제 밥그릇 챙기기도 급급한 도중에서 남 밥그릇 채워줄 여력이 어디 있겠슈? 차라리 며느리 턱주가리에 수염 돋길 바라지…….”

송만중은 최풍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의향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도중회의 최고 수장이며 대행수인 최풍원의 제의를 어그까며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도중의 신의를 믿지 못한단 겐가?”

도중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곧 탈퇴를 의미했다. 마지막 물음을 묻는 최풍원의 말투에 단호함이 시퍼렇게 묻어났다.

“신의를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면서까지 물건을 팔 수 없단 말이오!”

“그 말이 도중 전체 뜻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도원들 권익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고집만 피우는 행수한테 내 몸을 맡길 수 없소”

이젠 대놓고 송만중이 최풍원의 위신을 내려깎고 있었다.

“도중을 떠나겠다는 겐가?”

“내 하나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뭔 미끼상품이여? 피해만 주는 이런 도중은 내겐 필요없소!”

“당장 떠나거라!”

이제껏 꾹꾹 참고 있던 최풍원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떠나겠소!”

기다렸다는 듯 송만중이 북진도중회의 탈퇴를 선언했다. 그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배은망덕한 놈!”

객사가 있는 행랑채로 나가는 송만중을 쏘아보며 최풍원이 말했다.

“얘들아, 쫓겨난 마당에 한시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느니라. 황강패들은 모두들 짐을 꾸려 읍내 주막으로 간다!”

송만중이 사랑채를 나와 객사 마당에서 술을 마시며 잡담을 늘어놓고 있던 휘하의 보부상들에게 명령했다. 송만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강 패거리들이 일어나 행장을 차리며 떠날 채비를 했다. 각 상단의 객주들과 함께 온 보부상들과 장돌뱅이들이 어울려있던 행랑채 마당이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충주목의 큰 향시와 목계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황강나루의 송만중이 북진도중에서 탈퇴한다면 북진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황강은 포구는 좁았지만 어찌 보면 청풍의 북진나루보다도 강 하류 쪽에 위치해 있어 지리적으로 유리한 목을 선점하고 있는 나루였다. 만약 송만중이 충주나 목계나루의 객주들과 손을 잡고 하늘재를 넘어오는 경상도 물량을 틀어쥐거나, 한양과 서해안의 풍부한 물건들을 싣고 올라오는 경강상인들의 발목을 황강나루에서 틀어쥔다면 북진여각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황강나루는 포구가 좁고 물살이 거세 배가 정박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풍부한 영남 물산이 모여들어도 배대기가 위험한 황강나루를 경강상인들이 꺼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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