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건지산성은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거점이라고 주장하는 몇 개의 산성 가운데 하나이다. 전의 운주산성, 금이성, 예산 임존성은 이미 답사를 끝냈다. 홍성의 장곡산성과 학성산성은 아직 벼르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서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산이씨의 본향인 한산면 건지산성 부근에 있는 목은 이색 선생의 문헌서원만 돌아보고 인근의 건지산성을 돌아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나 혼자 원한다고 해서 돌아볼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성안에 있는 봉서사를 함께 볼 수 있어서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미루지 말고 혼자 떠나는 것이다. 물 한 병 찰떡 한 덩이를 배낭에 넣고 카메라만 챙겨 가지고 바로 출발했다.

봉서사(鳳棲寺)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배낭을 메고 우선 봉서사 경내로 들어갔다.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백제 산성 안에 있는 사찰이 다 그렇듯이 본전인 극락전은 고고하다. 삼배를 드리고 나와서 건지산성을 일러주는 팻말을 찾아 비탈진 산길을 올라갔다.

건지산성은 토성이다. 이 성도 다시 쌓으려는지, 아니면 정비를 하려는지 성벽 위의 나무를 다 베었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나무를 베느라 성벽 아래 중장비의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고 흙이 무너져 일부 훼손되기도 했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을 베어낸 그루터기가 선명하다. 흙은 온전한 황토이다. 베어낸 나무도 다 치워서 주변 정리가 잘 되었다. 토성은 다시 건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옛 모습이 뚜렷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성벽 위에 올라가서 성을 돌아보니 성의 윤곽이 다 보인다. 이 성은 건지산의 두 봉우리에 걸쳐서 긴 타원형으로 토축됐다. 양쪽 봉우리에 작은 테메식 산성이 있고 가운데 구릉을 잇는 산성은 자연스럽게 포곡식으로 되어 있다. 마치 두 고리를 이어 놓은 것처럼 내성은 테메식, 외성은 포곡식으로 축성되었다. 그리고 그 구릉에 한산면 호암리에서 영모리로 넘어가는 자동차 길이 나 있다. 자동차길은 2차선으로 좁은 도로이고 이 도로를 통해 성 안에 있는 사찰인 봉서사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길이 축성 시기부터 있던 길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 길의 호암리 쪽에 동문이 영모리 쪽에 서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에는 차가 심심찮게 지나다닌다. 도로 옆에는 작은 개울이 한산면 소재지 쪽으로 흘러간다. 개울은 양지쪽이라 겨울인데도 미나리가 파랗다.

봉서사에서 비탈길을 올라가 만난 성벽은 도로가 끊어놓은 곳에서 훨씬 정상 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처음부터 살펴보기 위해서 다시 서문으로 짐작되는 도로 쪽으로 내려왔다. 성위에 난 길로 내려오면서 살펴보았다. 토성이라도 지금처럼 성벽이 비스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성벽의 흙이 흘러 내려서 이렇게 비스듬한 성벽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성벽 양쪽에 기둥을 박고 널빤지를 댄 다음 황토를 가운데 넣고 다졌을 것이다. 황토와 점토를 물에 이겨서 다졌을 수도 있다. 석축 산성보다 오히려 더 견고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보존되어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건지산성을 토축 산성의 전형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1500년 전 이런 토목공사의 기법을 생각해낸 조상들의 지혜가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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