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서기 25년, 광무제(光武帝)가 다시 천하를 통일한 후한(後漢)시대. 이 무렵 동선(董宣)은 나이 일흔에 낙양령(洛陽令)에 임명되었다. 당시 낙양에는 권세를 믿고 불법을 자행하는 황족과 귀족들이 넘쳐났다. 한번은 호양공주의 하인 하나가 대낮에 저잣거리에서 사람을 죽인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낙양의 관리 누구도 그 하인을 체포하려고 하지 않았다. 호양공주는 광무제가 애지중지하는 딸이라 공연히 미운털이 박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백성들 사이에서 여론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동선이 이를 알아채고 자신이 옷을 벗더라도 그 살인범을 처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호양공주가 외출하기를 기다렸다. 과연 얼마 후 살인을 저지른 그 하인이 호양공주를 수행하여 집을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동선이 포졸들을 모두 동원하여 큰 사거리에서 호양공주가 탄 마차를 세웠다. 이에 호양공주가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대체 어느 놈이 마차를 가로막는 것이냐?” 이에 동선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공주께 아뢰옵니다. 저는 낙양령 동선이라 합니다. 도주 중인 살인범이 나타났다고 해서 지금 체포하고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한낱 낙양령 따위에 겁먹을 공주가 아니었다. 사납게 쏘아붙였다. “현령인 자가 감히 공주인 내게 칼을 겨누고 길을 가로막으니,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느냐? 그리고 도대체 누가 살인범이란 말이냐? 만일 내가 하인을 내어주지 않으면 네까짓 게 어찌할 것이냐?”

그러자 동선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큰소리로 부하들에게 명했다.

“당장 살인범을 마차에서 끌어내라!”

호양공주가 이 무례한 상황에 몹시 놀라 당장 그길로 황제에게 찾아가 눈물로 하소연하였다. 광무제는 호양공주가 모욕을 겪었다는 말에 크게 노하였다. 당장에 동선을 잡아들이라 명했다. 잡혀온 동선은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아뢰었다.  “황제께서조차 사람을 죽인 하인을 두둔하신다면 앞으로 천하를 어찌 다스리려하십니까? 그런 나라라면 저는 당장 목숨을 끊겠습니다.”

말을 마친 동선이 기둥에 머리를 들이 받았다. 순식간에 얼굴에 피가 낭자하였다. 그러자 광무제가 얼굴이 굳어지며 말하였다. “네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공주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면 용서하겠다.”

하지만 동선은 굽히지 않았다. 광무제가 힘을 다해 억지로 머리를 숙이게 하려고 했지만,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그러자 광무제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제라 해도 원칙 없이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를 풀어주어라!”

그날 이후 낙양성에는 불법과 악행이 한 순간 사라졌다. 이는 ‘후한서(後漢書)’에 있는 이야기이다. 노불습유(路不拾遺)란 백성들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라가 평화롭고 모든 백성이 정직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부강한 나라는 법과 질서가 바른 나라이다. 바른 나라는 관료가 부정한 권력을 이기는 나라이다.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문체부 관료들에게 씁쓸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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