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사람들도 약아져서 자신들이 거둔 물산을 가지고 장마당에 나와 직접 흥정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보부상들보다도 물건 값을 더 훤하게 꿰고 있었고, 장마당 소문을 더 빨리 알고 있었다. 그러니 ‘소경 단청 구경하듯’ 하던 예전의 얼렁뚱땅 바꿈이 장사는 이젠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행수님은 어떻게 된건가?”

“그러게 말이여, 밤은 점점 깊어지는 데…….”

아무런 기별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무료해진 사랑채 큰방 객주들이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별당과 사랑채 사이로 난 일각문이 열리며 최풍원이 차인 봉화수를 거느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객주들이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일순 조용해지며 모두들 일어서서 최풍원에게 읍을 올리며 예를 취했다. 최풍원이 객주들 인사를 받으며 상석으로 자리를 잡자 모두들 뒤따르며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좌중을 둘러보던 최풍원이 정적을 깨며 말문을 열었다.

“여러 객주님들! 통문을 띄워 도중회를 소집한 것은 황급히 상론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오. 자세한 사안은 내일 도중회서 정식으로 토의하기로 허고, 오늘은 내가 술을 낼 테니 그동안 적적했던 회포나 푸십시다.”

“대행수님께 박수를 올립시다요!”

사람들 비위를 잘 맞추는 서창객주 황칠규였다. 서창은 청풍의 서쪽에 있는 마을로 관아의 세곡을 쌓아놓는 창고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역로와 물길이 함께 지나가는 곳이었다. 또한 마을 뒤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오현봉수대라고도 하는 봉화는 부산 동래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을 넘어 죽령산, 그리고 단양의 소이산을 거쳐 충주 계명산 봉수로 이어졌다.

“요즘 시황은 어떻습디까?”

최풍원이 객주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완전 바닥입니다요.”

“장바닥에서 인총 구경을 할 수 없으니 장이 서도 거래가 없습니다.”

“장에 나와도 맞바꿀 물건이 없는 데 누가 장 걸음을 하겠습니까?”

“경상들이 올라와 장이 풍성해야 하는 데…….”

“물건만 풍성하면 뭘 하겠는가? 바꿀 돈이 있어야지.”

“그래도 물건을 보면 회가 동하게 되지.”

객주들이 저마다 떠들어댔다.

“흠, 참으로 큰일입니다. 오늘에야 우리도 뱃길을 열기는 했지만, 이미 목계에선 달포나 먼저 난장이 틀어지고 있소. 경상들은 목계에 진을 치구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영남은 물론 청풍 인근 물산들까지 목계장으로 속속 흘러가고 있는 형편이오. 이렇게 가다간 북진장은 장꾼들 발길이 끊기고 종당에는 목계장에 흡수되고 말거요.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 난장을 틀어 우리 상권을 보호하고, 도중회 권익도 되찾아야겠소!”

“대행수 어르신, 목계장에 빼앗기고 있는 상권을 되찾으려면 경상들 뱃머리와 장꾼들 발길을 북진으로 오게 만들어야 하는 데 무슨 묘안이 있으신지유?”

황칠규가 머리를 조아리며 최풍원에게 물었다.

“그거야 어린애 부랄 만지기보다 쉬운 일 아닌가? 딴 집 사람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뭐든 발림을 해줘야 할텐데, 장사꾼들이 혹하고 달려들 발림이 뭐겄는가?”

도담삼봉으로 유명한 매포나루에서 객주집을 하는 박노수가 황칠규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래, 애 부랄 만지기보다 쉬운 그 일이 뭐냐?”

“어이그 등신! 맨날 살살거리지만 말고 생각 좀 하며 살거라!”

박노수는 당연한 일을 묻는 황칠규가 답답하다는 듯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높였다. 박노수는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다.

“이 놈이 어디다 대구 삿대질이냐? 똑같은 장똘뱅이 주제에 난 척 하기는.”

“장사꾼이면 똑같은 장사꾼이냐? 장사꾼도 아랫질 윗질 여러 질이지.”

“뭐시여! 니 놈이 오늘 혼구멍이 나봐야 정신이 들겄냐?”

평소에 유순하던 황칠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불끈 일어섰다.

“두 성님들, 그만들 두슈!”

그 순간에 임구학이 두 사람을 말리고 나섰다.

“박 객주가 잘 보았네. 장사꾼들에게 발림이 뭐겠는가? 목계에 몰려있는 그들 발길을 돌리려면 목계장보다 헐한 값으로 물건을 풀어야지.”

최풍원이 대행수답게 잡도리를 차리며 좌중을 가라앉혔다. 그 문제는 이미 별당에서 봉화수와 나눴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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