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해피마인드 아동가족 상담센터 소장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졸업여행으로 제주도를 갈 때 타보았던 비행기를 다른 나라를 가기 위해 탄 것이다. 그때까지 해외여행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며 먼 나라 이야기였다. 뜻하지 않게 나는 일본 고흐라는 곳을 가게 됐다. 2월이었다.

가는 날은 일행이 있어서 처음 떠나는 여행이었음에도 별걱정 없이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같이 간 일행보다 나는 먼저 돌아와야 했다. 고후에서 나고야 공항까지 혼자서 이동해야 했다. 새벽같이 택시를 불려 고후 버스 터미널에 가야했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나고야 공항까지 가야했다.

저녁부터 내린 눈은 폭설로 바뀌면서 버스는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시간 약속을 철저하게 지킨다는 일본인들의 신조도 폭설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떠난 다음에야 나는 나고야 공항에 도착했다. 핸드폰도 충전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준비해간 돈도 바닥이 난 상황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일본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무인도에 혼자 떨어진 느낌이었다. 국제 미아가 될 판이었다. 동안 나는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배운 공부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용할 수 있는 영어가 ‘Excuse me'와 ‘thank you' 전부였다. 예상치 않았던 상황에 닥치고 보니 머릿 속은 이미 백지상태였고, 몸은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머물었던 고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고후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귀를 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이었지만 귀를 열고서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초집중을 해서 듣다보니, 비슷한 말들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이를 테면 ‘구다사이, 데스, 아노’라는 말들이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그 말뜻을 생각하면서 저 말들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를 유추하면서 나는 4시간을 넘은 시간을 버스 안에서 긴장한 채 있어야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 놓이게 되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다른 문화에서는 유능함이란 자기 생활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심하게는 장애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위축되고 극도의 소심함으로 의사소통 밖에서 서 있게 했던 그 경험은 ‘나는 얼마나 유연하지 못한가’를 돌아보게 했으며, 낯선 상황에서 대처하는 것을 보면서 사고(思考)의 경직성을 보게 되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한다. 처음 한 경험이 긍정적인 느낌으로 성공적인 느낌으로 남는다면 좋겠지만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넘어지는 경험을 한다. 처음 넘어졌던 그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여 자신의 기억에 저장할 것인가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를 통해 겸손함을 배우기도 하며 타인을 수용하는 폭을 넓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는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실수는 하나의 피드백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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