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이 지천으로 넘쳐나면 이를 사려고 경강상인들이 북진으로 배를 몰고 강을 거슬러 올라올 것이고, 그들이 싣고 올라오는 소금과 어물들, 그리고 갖가지 진기한 물건들이 강변에 부려지면 이를 보기 위해 덩달아 몰려드는 구경꾼들까지 뒤엉켜 난장은 성시를 이루게 될 터였다. 그렇다고 구경꾼들만 모인다고 난장이 성시를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장터에는 물건을 사줄 장꾼들이 함께 모여들어야만 했다.

북진나루에 가면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중 상투도 살 수 있고, 언년이 턱수염까지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사방팔방에 퍼져야만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는 객주들이나 보부상들, 그리고 경상들이 이런 호기를 놓칠 리 만무했다. 그러니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려면 새재를 넘어 연풍으로 오거나, 하늘재를 넘어 미륵리·수안보·살미·충주를 거쳐 목계나루로 빠지는 영남객주나 보부상들의 발길을 북진나루로 돌리고, 동시에 목계에 머물고 있는 경강선의 뱃머리를 돌려 경강상인들을 북진나루까지 오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목계장보다 개시가 늦어 선수를 빼앗긴 북진의 상권도 회복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영남객주나 보부상들의 발길을 북진으로 돌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껏 경상도에서 재를 넘어 황강에 모이는 물산들을 목계와 북진에서 반반씩 점유하며 서로 간에 큰 충돌 없이 상거래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해 겨울이 워낙에 길어져 강물이 쉽사리 풀리지 않자 상류의 북진보다는 운송하기 수월한 하류의 목계장으로 물산들이 내려갔다.

목계도중은 지리적 잇점으로 경상도 물산들을 앉은 자리에서 받아 텃밭처럼 쉽게 해먹고 있었다. 그런 알토란같은 밥줄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하루아침에 빼앗으려 든다면 어느 쪽이든 가만히 앉아 당할 멍텅구리는 없었다. 게다가 강물이 얼어 물길이 막혀 물산 수급이 어려운 북진여각으로서는 육로를 통한 경상도 물산은 소경 지팡이 같은 절대적인 밥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상도 객주들의 물산을 도거리해 북진여각에 수급하는 최선봉의 객주가 황강의 송만중이었다. 그런데 만약 봉화수의 말처럼 송만중이가 딴 주머니를 찼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송만중이 은밀하게 목계 장사꾼들과 내통하며 밀거래를 하고 있다면 순순히 북진여각의 뜻에 따르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북진도중회의 규약까지 어겨가며 목계도중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면, 약삭빠른 송만중이가 그에 상응하는 어떤 대가를 목계로부터 받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목계 객주들과 타협도 문제였지만, 뭐니뭐니해도 목계와 북진도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저울질을 하고 있는 송만중이 더 큰 문제였다.

“행수 어르신! 송 객주는 어찌 하실 요량인지요?”

“만약 사실이라면 도회에서 결의해 징치를 해야지!”

“가만히 있을까요?”

“앉은자리에서 당하진 않겠지.”

“난장 개시도 목전이고, 부딪치지 않고 해결할 방법만 있다면…….”

봉화수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고 조용하게 해결되기를 바랐다.

“이번 참에 아예 동곳을 빼버려야겠어. 그놈 우리와 함께 갈 놈이 아녀!”

봉화수와 달리 최풍원은 단호했다. 쉰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오는 단호함은 이제껏 장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온 그의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애당초 도움이 되지 않는 싹은 더 자라기 전에 뿌리 채 뽑아버려야 뒤탈이 없다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행수 어르신! 객주들이 다 모였답니다요!”

그때 밖에서 행랑아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수야, 송 객주 얘기는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미 별당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직 달이 떠오르기 전이기도 했지만, 별당이 나무숲에 파묻혀 있어 행랑아범이 들고 앞서가는 조족등이 아니면 한 발짝도 떼어놓기 어려웠다. 별채의 일각문을 나서자 군데군데 질러놓은 화톳불이 행랑채 객사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행랑채 큰방에는 북진을 중심으로 인근 일백 여리 안팎에 흩어져 있는 객주들이 내일 열릴 도중회에 참석하기 위해 와 있었다. 영월 맡밭객주 성두봉, 영춘객주 심봉수, 제천객주 차대규, 매포객주 박노수, 단양 하진객주 우홍만, 장회객주 임구학, 덕산객주 임칠성, 양평객주 금만춘, 서창객주 황칠규, 황강객주 송만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북진여각 휘하 물상객주들이었다. 물상객주들의 주업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사들여 되팔고, 위탁받은 상품들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해주고 구전을 먹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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