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여각의 깊은 울 안 별당에서는 최풍원과 봉화수가 무릎을 맞대고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 이번 파수엔 어디로 돌텐가?”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물었다. 봉화수는 북진여각을 통해 거래되는 온갖 물산의 입출을 담당하는 최풍원의 차인이었지만, 보상객주도 함께 겸하고 있었다. 보상객주는 각지의 장을 돌아다니며 물산을 수집하고, 그 지역 객주를 상대로 도거리하는 일이 전문이었다. 봉화수는 최풍원의 심복으로, 북진여각의 음지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는 인물이었다.

“예, 이번 파수엔 장돌림은 접고 난장 트는 것이나 거들까 하는 데, 행수 어르신 의향은 어떠신지요?”

화수가 풍원의 의향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네, 내 밑에 있은 지 얼마나 됐지?”

“여덟 해 남짓 되었습니다.”

“그럼 올해?”

“스물 둘입니다.”

“어느새 그렇게 됐나? 이젠 혼사도 올려야겠구먼.”

“…….”

갑작스런 혼사 이야기에 쑥스러워진 화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 허게!”

최풍원은 자신의 심중을 환하게 읽고 있는 봉화수가 대견했다.

그렇잖아도 이번 파수에는 장돌림을 그만 두고 난장 틀 준비를 시킬 참이었다. 이미 강 하류의 목계에서는 난장을 튼 지 달포가 지나가고 있었다. 북진에서도 하루빨리 난장을 틀어야 할 다급한 형편이었다.

북진이나 목계에서 열리는 난장은 여느 고을에서 열리는 난장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보통 난장은 닷새마다 일정하게 열리는 향시 외에 임시로 트는 특수한 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난장은 어떤 지역에서 특산물이 일시에 쏟아져 나올 때 열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이기는 했지만, 흉년이 들거나 수해?호환?돌림병 등이 일어나 인심이 흉흉해져서 폐촌이 될 위기가 닥쳤을 때 난장이 틀어지기도 했다. 난장을 틀어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들끓게 되면 가라앉앗던 분위기가 활기차지고 악귀를 눌려 불길한 기운을 막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난장들은 열흘이나 길어야 한두 달이면 끝이 났다. 생산되던 물산이 끊기거나, 난장을 틀었던 요인이 해결되면 더 이상 장이 설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진이나 목계난장은 달랐다. 강물이 풀려 뱃길이 열리면 황해에서부터 한강을 타고 올라온 경강선들이 포구마다 닻을 내리고 온갖 다양한 물산들을 갯가에 부려놓았다. 그러면 포구에는 자연스럽게 난장이 틀어졌다. 경강상인들은 여각을 통해 거래를 하고, 여각에서는 경상들이 가져온 물산을 각 지역 임방객주들에게 도거리로 분배했다. 이렇게 도거리 된 물품들은 객주들에 의해 다시 보부상들에게 넘겨졌다. 개중에 자금력이 있는 객주들은 경강상인들과 은밀하게 직거래를 하기도 했다.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 위해 충청도는 물론 강원도와 경상도 일대의 객주들이 고개를 넘거나 물길을 따라 남한강 연안의 나루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경상들로부터 구입한 물품들은 보부상들에 의해 내륙 깊숙한 곳까지 옮겨졌고, 경상들 또한 보부상들과 맞바꾼 물건들을 한양으로 가져가기 위해 나루터에 야적을 했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나루에는 이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이 포구에 즐비했으니 강나루 난장은 성시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난장이 틀어지면 나루터 여각마다 각지의 거상들이 모여들어 물산들을 대량으로 도거리 하느라 장마당에는 엄청난 돈이 강물처럼 흘러 다녔다.

남한강 상류에서 가장 큰 난장이 펼쳐지는 곳이 북진과 목계였다. 더구나 두 난장은 먼저 취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밖에 없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였다. 물량으로 치면 목계보다 덜할 것도 없는 북진이었지만, 목계보다 백두대간 쪽으로 훨씬 깊은 상류의 산중에 있었기에 얼어붙은 강물이 녹아 뱃길이 풀리는 시기가 자연 더딜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올해는 겨울이 유난히 길어 난장이 자꾸만 늦어지고 있었다. 이미 문경 새재와 월악산 하늘재를 넘어오기 시작한 경상도의 많은 물산들을 강 하류의 목계장에 빼앗기고 있는 형편이었다. 북진에서도 하루빨리 난장을 개시하여 상권을 지켜야 했다.

“어떻게 해야 목계에 빼앗기고 있는 것을 벌충할 수 있겠나?”

“행수 어르신, 북진이 살려면 목계부터 잡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어떻게 해야지?”

“숨통을 막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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