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상류 최대의 포구인 북진나루에는 성수기가 되면 많게는 일백여 척의 배들이 한꺼번에 정박했다. 한강 수로를 따라 황해에서 나는 소금과 간절이 해산물, 건어물을 싣고 강원도 영월까지 올라갔던 상선들은 내륙에서 맞바꾼 곡물들을 가득 싣고 한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북진나루를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이 내리고 나루터에 닻을 내린 뱃사람들이나 등짐·봇짐장수들이 여장을 풀어놓으면 주막마다 구성진 타령들이 밤새 흘러나왔고, 떠돌이 뜨내기들은 주모가 따라주는 술로 목을 축이며 술동이를 비우느라 날 새는 줄 모르고 흥청거리던 곳이 북진이었다.

북진에서도 상권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 최풍원의 북진여각이다. 북진여각에서 내려다보면 강 건너 청풍 읍성은 물론 인근의 아름다운 경치와 활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협곡 사이를 뚫고 여울을 이루며 망월성을 휘돈 강물이 병풍벼루를 지나 마당바위가 있는 북진나루에 이르면 강폭이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포구는 멍석을 수 만장 펼쳐놓은 것처럼 넓고 잔잔했다. 북진여각은 금수산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아홉 줄기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대덕산을 등지고 강가 야트막한 언덕들이 연꽃처럼 피어난 곳에 자리 잡아 포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배가 닻을 내리는 나루터 앞에는 주막들이 강을 따라 즐비했고, 강둑을 올라서면 갯벌장이 열리는 널찍한 장마당에 가가들이 마주보며 늘어져 있다. 마을은 장마당에서도 더 올라간 언덕배기를 따라 자리 잡고 있는데, 삼백여 호쯤 되는 여염집들이 옹기종기 지붕을 맞대고 있다. 게딱지처럼 땅바닥에 납작 코를 박고 있는 흙집들은 거무칙칙하게 퇴색된 초가가 대다수였고, 지난 가을 새 짚으로 이엉을 해 입힌 누런 초가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북진여각은 그 초가들을 거느리듯 마을 앞 쪽에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삼백여 호나 되는 집들 중에서 기와집은 마을 뒤쪽의 정씨 문중 재실과 북진여각 뿐이었다. 특이하게도 달 월(月)자 형으로 지어진 북진여각은 안채와 별당 채가 높은 담으로 작은 일곽을 이루고, 그 바깥으로 사랑채, 행랑채가 따로따로 담으로 둘러진 다음 다시 높은 바깥담으로 전체를 감싸 크게 일곽을 이뤘다. 행랑채는 담장 대신 고방이 입 구(口)자로 둘러쳐져 또 다른 일곽을 이루며, 그 안에 삼십여 칸의 객사와 외양간, 마구간이 들어앉아 있다. 사랑채는 행랑 마당을 가로질러 터져 있는 행랑채 중간을 지나면 중문이 나온다. 그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회랑처럼 길게 일(一)자로 지어진 제법 규모가 큰 집이 사랑채다. 목조와가로 규모 있게 지어진 사랑채는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지만 기와를 얹은 널따란 팔작지붕이 오히려 단아하면서도 묵직하게 느껴진다.

사랑채 앞 담장 밑에는 아무 것도 심어져 있지 않고 부귀를 바라는 석류 세 그루만 심겨져 있다. 사랑채 뒷마당에서 안채 쪽을 보면 두 개의 일각문이 보이는 데, 왼쪽문은 안채로, 오른편은 별당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널찍한 안마당에는 ㄱ자 형 안채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는 부엌·안방·대청·건넛방이 자리하고, 누마루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 옆으로는 담을 경계로 별당 채가 있는데, 그 안에는 연못과 정원, 정자와 별당이 온통 나무들에 파묻혀 있어 밖에서 보면 마치 숲처럼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바로 이 집이 청풍 인근 일백 여리 안에서는 제일로 부자라는 거상 최풍원의 북진여각이다.

강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며 어스름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북진여각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내방객이 끊겨 썰렁하기만 했던 객방에도 모처럼만에 활기를 찾았다. 닷새마다 열리는 영춘, 단양, 제천, 청풍, 한수, 충주를 떠도는 장돌뱅이들과 장이 열리지 않는 강원도·영남 두메산골까지 물건을 지고 이고 다녀온 부상과 보상들과, 북진의 북창에서 한양의 용산나루로 세곡을 실어가기 위해 강을 타고 올라온 조운선·상선의 뱃꾼들로 행랑채 객사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동안 휑하던 마방에도 객주들이 끌고 온 나귀와 소들로 모처럼 만에 그득했다. 행랑부엌에서는 객방 나그네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 대여섯 아낙들이 쩔쩔 매며 재빠르게 손을 놀리고, 여각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머슴들은 마방에 매여 있는 짐바리 가축들에게 여물을 퍼 나르느라 마당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더구나 내일은 북진여각에서는 최풍원 휘하의 각 나루 임방객주들이 모여 도중회를 여는 날이었다. 최풍원 대행수는 뱃길이 풀리는 용왕제에 맞춰 도중회를 열기 위해 보름 전부터 동몽회에서 발 빠른 놈들을 골라 객주들에게 통문을 돌렸다. 도중회는 객주들 서로 간에 공동이익을 도모하고 상부상조하며 상도덕을 지키기 위한 조직으로, 이를 유지하기 위해 자치적으로 규정한 엄한 규율을 지켜야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