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충북수필문학회장

봉수산 대련사는 매우 의미 있는 절이다. 백제의 마지막 항전지 주류성으로 추정되는 몇 개의 성 가운데 하나인 임존성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임존성에 연당(蓮塘)과 연정(蓮井)이 있어서 절 이름을 대련사(大蓮寺)라 한 것만 봐도 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니 바로 사찰 아래이다. 극락전은 작고 아담한데 절집 마당에 커다란 느티나무 세 그루가 버티고 있어 사천왕을 대신하는 듯했다. 느티나무와 함께 성벽처럼 높이 쌓아 올린 축대도 퇴락한 사찰이지만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돌에 오른 물때도 천오백년 세월을 지나면 이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보다.

마당에서 속인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스님에게 합장했다. 스님은 내가 도침대사를 뵈러 온 것을 모르는지 합장이 매우 짧았다. 마당은 빗물에 쓸려 백골 같은 자갈이 드러났다. 어린 날 가을이 돌아오면 산에서 황토를 파다가 마당을 돋우었던 옛날이 생각났다.

극락전은 얼른 보아도 보물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인 비교적 작은 규모이지만 작게 보이지 않았다. 큼직큼직한 자연석을 아주 높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지붕 규모에 비해 굵고 크다. 맞배지붕도 마찬가지이다. 겹처마로 더 웅장해 보이는데 처마의 고색창연한 단청도 아미타부처님의 자비를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 거기 걸어놓은 극락전 현판 글씨가 또한 소박한 명필이다.

닫힌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서 삼배를 올렸다. 마음으로는 도침 승장에게 올리듯 경건하게 올렸다. 좁은 법당 안에도 삼존불을 모셨고 탱화도 거룩하다. 최근에 누가 큰 재를 올렸는지 짙은 향흔이 남았다.

아마타부처님, 관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을 바라보며 도침의 안부를 물었다. 부처님은 다 알고 있으리라. 바로 이곳 임존성에 머물러 있던 흑치상지가 당의 소정방에게 사로잡힌 후 다시 도침을 공격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동지가 적과 한편이 되어 그 적에게 공격을 당하는 도침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하는 백제부흥군의 기막힌 최후를 상상해 보았다. 동지들이 다 흩어져 일부는 사로잡히고 사로잡힌 대장이 다시 적이 되어 나타나고 배반한 동지에게 죽음을 당하는 슬픔을 지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나라의 운명이 비바람에 휩쓸려도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되지는 말아야 한다. 아무리 승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적장을 포로로 잡아 그로 하여금 제 나라를 치게 하는 치졸한 지도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극락전 앞에 삼층석탑이 고고하다. 가만히 합장하고 서 보았다. 석탑은 세월의 시달림인지 비바람의 보챔인지 닳고 닳았다. 석탑은 마모될수록 고고하고 인간은 세파에 깨어질수록 추해진다. 나는 마당에 서있는 분들이 수상쩍고 그들은 나를 참 이상한 손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주도 없이 삼배만으로 고고한 척하는 내가 나도 우습다. 커다란 느티나무를 한 번 만져보고 산신각은 가지 않았다. 산성으로 오르면서 자꾸 절이 되돌아보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