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소작을 부치다 가솔들 입에 풀칠은커녕 도지도 바치지 못하고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지난해부터 점박이를 따라 다니며 늦장사를 배우고 있는 애송이 등짐꾼 필동이었다.

“이미 말라버린 마누라한테 물 나오기는 글렀고, 시원한 물 맛 보고 싶거든 니눔도 콸콸 솟는 샘물 하나 새로 파!”

점박이의 농에 두리기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와르르 웃어 제꼈다.

“그래, 두 연놈은 워떻게 됐댜?”

“감영으로 잡혀갔다는 데 풍속을 해친 강상죄인이니 참형을 면키 어렵다고들 하더구먼.”

“아무리 궁해도 먹을 거, 못 먹을 거는 가려먹어야 뒤탈이 없는 법이지.”

“세상이 어수선하니 별 해괴한 일들이 다 생기는구먼.”

“그건 그래도 양반이지. 내가 몇 해 전 장삿길에 들은 얘기는 자식놈이 두 눈 벌겋게 살아있는데도 며느리하고 붙어먹다 들통이 났디야. 아들이 출타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두 연놈이 붙어 그것도 벌건 대낮에 홀라당 벗고 그 짓을 하구 있더랴.”

“이건 도 뭔 소리랴?

과부 며느리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인 터에 이번에는 판개가 아들이 살아있는데도 그런 짓을 했다며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판개는 남이 해놓은 일을 후정거리며 물타기 하는 밉살스런 녀석이었다. 예전 장사를 같이 다니면서도 점박이가 겨우 흥정을 해놓으면 어느 틈엔가 파고들어 더 좋은 조건을 내세워 손님을 가로채가기 일쑤였다. 얌체였다. 그래서 점박이와 판개 사이에 드잡이를 한 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래, 어떻게 됐댜?

더욱 고약해진 소리에 사람들이 판개에게로 쏠렸다.

“눈이 훌러덩 뒤집힌 아들이 벗어놓은 아부지 바지와 마누라 고쟁이를 들고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그 일을 알렸디야. 그래서 관가에 잡혀가게 됐고…… 원님은 어떻게 판결을 냈는지덜 아는가?”

“당연지사 마누라하고 아부지가 벌을 받았겠지”

“니눔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여. 그러니 아직도 고린내 진동하는 객방을 떠돌며 뜨내기로 사는 거여.”

판개가 점박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지랄할 놈! 그런 네놈 인생은 향내 나냐?”

“이 놈아, 너와는 애당초 근본부터 다르지. 암 다르고 말구!”

“낯짝도 모르는 선조 대에 그깟 묘 참봉 한 것도 벼슬이라고 재기는, 지나가는 똥개도 웃는 줄 알거라. 이 어리석은 눔아!”

“무지한 놈! 남 조상한테 낯짝이 뭐냐? 그러니 불쌍놈 소리를 듣는 게여.”

“잘났다, 양반 놈아!”

“아, 쓰잘 데 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얘기나 어이 혀보라구!”

점박이와 판개의 악다구니에 이야기가 끊어지자, 조바심이 난 사람들이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글쎄 말이여, 고변한 아들이 곤장을 맞고 옥에 갇혔디야.”

“그럴 리가? 그런 드러운 짓을 한 연놈들을 죄 줘야지, 왜 아들한테 죄를 준디야?”

“원님 왈, 마누라는 버리고 또 얻을 수 있지만 아비와 자식 간은 천륜이니 사람이 끊을 수가 없다는 거여. 그런고로 자식이 아비를 능멸하고 천륜을 저버렸으니 아들에게 벌을 내렸다는 거여. 알겄냐?”

“그것참, 우리 같은 상놈들 생각으로는 두 연놈을 자근자근 각을 떠 뼈를 추리고 묵사발을 내겠구먼. 양반님네들은 죄 없는 아들을 잡는 희한한 법을 가지고 있구먼.”

“양반님네들 법이 그런 줄 이제 알았냐?”

“그러게 말여.”

시절은 점점 어수선해져만 갔다. 세상이 그 모양이니 들리는 소문마다 흉흉한 이야기요, 생겨나도 해괴망측한 일들만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마, 해가 넘어가는구먼.”

저녁 해가 비봉산 너머로 기울며 강물이 불타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에 반사된 벌건 노을이 흡사 수십만 개 촛불을 밝혀놓은 것처럼 일렁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자 주모가 장대 높이 현등을 내다 걸었다.

날이 저물어가는 데도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 세상 구르는 이바구질에 정신이 빠져 서두르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북진은 비록 관아가 있는 읍성과 떨어져 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지리적 여건으로 주변 물산들이 모여드는 청풍의 중심이다. 북진은 아주 옛날부터 나루터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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