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오는 12일 예정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을 앞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물론 충청권 의회의원, 손학규 등 제3지대론자, 국민의당, 비박계의 바른정당 등이 반 전 총장 영입을 위해 기를 쓰거나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소속정당에서 탈당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치를 왜 하고 있는지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 비박계를 대표해 원내대표 경선에 참여했던 나경원 의원이 탈당 시점을 하루 앞두고 탈당보류를 선언하며 그 이유가 ‘반기문의 대권도전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 어이없는 실책이다. 나 의원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후 20대 총선까지 내리 4선을 하고 있는 중진의원이다. 보수로 대변되는 새누리당의 중심인물로 활동해온 그간의 정치 소신이 무엇이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정당의 조직적인 가치를 외면하고  반기문이라는 대권 가도의 가능성에만 무게를 둔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무조건적인 ‘반기문따르기’는 나 의원에 국한돼 있지 않다. 정작 당사자는 대권에 대한 정확한 입장, 즉 어떤 당과 함께 하겠다는 입장조차 밝히지 않은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기를 마친지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 후보로서 준비된 것이 없고 검증되지 않은 반 전 총장에 대해 이토록 정치권이 너도나도 줄을 서고 있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반기문이라는 브랜드 이미지 덕분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다툴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점, 더민주의 야권 후보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여권후보자들의 낮은 지지율, 충청대망론 등이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수많은 정치인들이 반 전 총장에 줄을 대고 있지만 이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대통령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없을뿐더러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정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근간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두고 각종 정책을 새롭게 만들고 보완하며 나름의 확고한 국정운영의 철학이 농익을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국정운영의 철학을 함께할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가 동반 돼야 한다.

하지만 이미 대권경쟁이 시작된 마당에 아직까지 소속 정당이 없는, 정치에 대한 뿌리가 없는 반 전 총장을 국민들이 결선에서 표를 줄지 미지수다. 나 의원, 정진석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반 총장을 돕겠다는 친박계 충청권 새누리당 의원들, 바른정당, 국민의 당, 제3지대를 구상하고 있는 손학규 전 의원 등. 공통적으로 마치 ‘재활용봉투’에 담기고자 기를 쓰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의 모습이다.

정치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을 중심으로 개개인의 소신이 표현되는 장(場)이다. 소속된 정당의 인적 네트워크와 이를 지지하는 다수 국민이 함께 할 때 발휘하게 된다. 개개인의 이권에 따라 수도 없이 당적을 변경하고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하는 행태는 낡은 정치문화다. 촛불시민혁명을 이뤄낸 2017년의 정치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하는 정치인이라면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역량을 만들어가기를 주문한다. 당을 버리고 새로운 당을 만들고, 합류하며 성급하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정치하는 것은 결코 국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가라 할 수 없다. 권력을 쫓아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당정치를 후퇴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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