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거리자 북진마을 앞 나루터로 가는 길에는 사람들의 줄나래비가 이어졌다. 나루터에도 용왕제를 구경 왔던 사람들이 장꾼들과 어우러져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미처 건너지 못하고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읍성 사람들은 강만 건너면 볼일이 끝나겠지만, 강 상류의 능강, 하천, 천상, 장회나 강 하류로 가는 솔무정, 광아리, 특히 참나무골 사람들은 바쁘게 발길을 재촉해도 밤이 이슥해서나 도착할 사십 여리 먼 길이 남아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줄도 모르고 용왕제가 열렸던 나루터 앞 주막집에는 서너 무리의 보부상들과 장꾼들이 모여 앉아 술판을 벌이며 저마다 떠들어대고 있었다. 주막집 사립문 밖에는 노새와 황소들이 길마를 짊어진 채 하릴없이 땅바닥만 파고, 마소 주인들은 주막집 마당에 놓여있는 들마루나 마당 한편에 펼쳐진 멍석에 둘러앉아 술타령을 벌이고 있었다. 홑치마를 입은 주모 엉덩이에서는 봄바람이 잔뜩 살랑거리고, 음흉한 사내들은 목구멍으로는 탁주를 넘기고 있었지만 눈초리는 부엌을 드나드는 주모 엉덩이만 따라다녔다.

“저어기 큰재 너머 두래실이라는 데선, 자식도 아니고 손자도 아닌 애를 낳았다는구먼.”

봇짐꾼 점박이였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여?”

“세상 천지에 근본 없는 씨가 어딨단 말여.”

“아들도 손자도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이냐? 땅에서 솟았단 말이냐?”

술을 먹던 사람들이 죽령 너머 영남으로 장사를 갔다 온 점박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번 장삿길에 풍기 근처 주막집에서 하루를 묵었는디, 글쎄…….”

점박이가 머뭇거리자, 사람들이 더욱 궁금해 하며 점박이 곁으로 파고들며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나원참, 입에 담기도 망칙혀서…….”

“뜸 들이지 말고 어이 좀 풀어놔 봐!”

“그려, 시원하게 어서 끌러 봐!”

점박이가 난처해하며 뜸을 들이자 사람들은 더더욱 애가 달았다.

“하이고 참! 시아부지하고 며느리가 상피를 붙어 애를 낳았다는구먼.”

“아무리 지랄 같은 세상이라지만 그런 헛소문까지, 에이구!”

“에이, 지랄할 눔아! 어디서 물고와도 그런 돼먹지도 않은 얘기를 물고 왔냐?”

곁에 있던 사내들이 혀를 차며 점박이를 타박했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헛소문이면 얼매나 좋겄냐. 혼사를 치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 나갔던 아들이 갑자기 광란을 일으켜 밭고랑을 뒹굴다 급살을 했다는디, 서너 해 만에 며느리가 애를 낳았다면 그게 뉘 자식이겠냐?”

“청상이니 동네서 군침 흘리던 수캐들도 많았을 게 아니냐?”

“암, 그렇고 말고!”

사람들은 애써 믿고 싶지 않아 했다. 흔히 있는 치정 이야기라면 술김에 안주 삼아 씹는 재미거리로라도 들을 만 했겠지만, 사람 탈을 쓰고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얼근해진 술판이라도 듣기에 민망하고 낯 뜨거운 이야기는 있는 법이었다.

“자식 없는 청상이라 곧 친정에서 데려가겠지 했는 데 그대로 눌러앉아 살더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궁핍한 살림에 홀시아부지까지 건사하며 사는 며느리가 고마워 사람들 칭송이 대단했고, 마을 자랑거리였었다는구먼.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을에 흉한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디야. 그래도 모두들 설마설마 귓등으로 흘려 버렸디야. 그런데 며느리 방으로 들어가는 시아부지를 봤다는 둥, 새벽녘에 물 길러 가다 옷고름을 여미며 윗방에서 나오는 며느리를 직접 목격했다는 둥 온갖 망측한 말들이 떠돌더니 종당에는 애를 낳았다는구먼.”

“그럼 촌수가 워떻게 되는 겨?”

“며느리 밭에서 나왔으니 손자가 되야겄지만, 씨 뿌린 시아부지 쪽으로 따지면 아들이 되구…… 그놈의 집안 꼬라지 참 복잡허게 생겼구먼.”

점박이와 같이 봇짐장사를 하다 힘에 부쳐 이제는 북진과 읍성만을 오가며 앉은장만 보는 판개였다. 점박이와 판개는 젊어서부터 함께 사방팔방을 돌아치며 장사를 했던 막역지우였다.

“이놈의 세상 우째 될라고…… 말세여!”

“그러나 저러나 며느리하고 붙어먹을 때 맛이 어땠을까?”

판개가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야비하게 말했다.

“그 맛이야 그게 그거지, 뭐가 별다르겠어? 동굴 속은 다 어둠컴컴하고 축축하겄지.”

“우리 마누라는 컴컴하기만 하고 축축하지는 않던디?”

“판개 성님은 욕심도 과허시유, 형수 나이가 얼매유? 물이 말라도 한참이나 말랐을 형수한테 바랄 걸 바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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