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관이 축문을 마치고, 제관의 인도에 따라 초헌·아헌·종헌이 끝나자, 다음에는 선주들이 그 다음에는 뱃꾼과 떼꾼들이 잔을 올리며 사배를 올렸다. 그리고는 차려진 제물을 조금씩 떼어 술잔에 모아 제단에 뿌리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배로 가져가 뱃전을 돌며 뱃바닥과 강물에 고수레를 했다. 올 일 년 무사한 뱃길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각자 배로 갔던 선주들의 고수레가 거의 끝나가자 축관이 소지를 모아 불을 붙였다. 뱃사람들의 용왕제가 모두 끝나자 이번에는 구경꾼들에게도 발복할 시간이 주어졌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앞 다퉈 젯상 앞으로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제상 위에는 저마다 기원을 하며 올린 술잔들로 어지럽혀졌다. 이를 지켜보던 구경꾼들도 너도나도 소지를 올리며 자신들의 운수를 빌었다. 사방에서 검불이 타듯 순식간에 후르륵 소지가 타올랐다. 재가 머리 위를 마구 날아다녔다. 마치 하루살이떼가 일시에 비상을 하듯 소지에서 흐트러진 재가 사방으로 퍼지며 하늘 위로 마구 치솟았다. 용왕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는 느티나무 주변은 소지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강변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용왕제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선주들이 추렴한 술과 고기를 두리기로 먹으며 떠들어댔다. 오랜만에 맛보는 맛난 음식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넘쳤다. 시절은 어수선하고 사는 것은 팍팍했지만, 오늘 하루 용왕제가 열리는 북진나루 안팎에는 길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구경꾼들 틈을 비집고 흰색 바지저고리에 밤색 더그레를 걸친 상쇠가 한 무리의 풍물패를 이끌며 나타났다. 어수선하던 구경꾼들의 시선이 풍물패로 쏠렸다. 붉은 상모 벙거지를 쓴 상쇠가 재비들을 이끌며 놀이를 시작했다. 나비상이 달린 벙거지를 쓰고 가사를 입은 재비들이 꽹과리·징·장구·북·소고 채를 정신없이 휘두르고, 한껏 신명이 난 날라리는 목젖이 드러나도록 고개를 젖혀가며 태평소를 신명나게 불어댔다. 상쇠의 목말을 탄 무동이는 흥을 참지 못하고 자신의 남괘자 자락을 쥐고 꽃나비춤을 추었다. 풍물패의 풍악 소리가 자진모리에서 휘모리장단으로 급물살을 타자 징과 북과 꽹과리는 미친 듯 울어대고, 열닷 발 상모재비는 빠질 듯 고개를 휘둘러대며 고사마당을 옆돌아쳤다. 풍물이 무르익자 흥에 겨운 구경꾼들도 한데 어우러져 춤판이 벌어졌고, 절로 어깨춤이 나오게 하는 휘모리장단은 앉아있는 사람들 엉덩이까지 들썩거리게 했다. 한바탕 놀아 제치던 풍물이 잦아들고 애절한 태평소 소리가 들려오자 트레머리에 꽃방갓을 쓰고, 하얀 분칠에 앵두처럼 입술을 칠한 꽃거리 색시들이 종종걸음으로 몰려나와 느티나무 주위를 한 바퀴 휘돌았다. 깡총한 다홍치마에 반회장 노랑저고리를 입은 꽃거리 색시들은 긴 치마 자락에 숨어있는 빨간 꽃신 코를 살짝살짝 드러내며 교태스런 몸짓으로 어깨춤을 추었다. 뱃전에 서 있던 선주와 뱃꾼들도 못내 아쉬운 듯 꽃거리 색시들을 간절하게 내려다보고, 그녀들은 그윽한 눈빛으로 살짝살짝 눈길을 흘리며 아양을 떨었다.

“저 년, 눈빛에 애간장이 다 녹는구먼!”

“낭창낭창한 저것들 허리 좀 봐!”

“아이고 이쁜것들!” 

뱃전에서 이를 내려다보던 뱃꾼들이 꽃거리 색시들의 요염한 요분질에 진저리를 쳤다.

“개지랄들 떨구 자빠졌네! 진진 겨울 저 년들 밑구멍에다 처박은 돈이 얼만데 안직도 정을 못다시구 지랄들이냐?”

지난 늦가을에 올라와 강이 얼어붙자 겨우내 북진에 발이 묶였던 선주들과 뱃꾼들이 많았다. 그들이 내륙 깊숙한 오지에서 시간을 죽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꽃거리 주막집을 찾아 색시들과 노닥거리며 긴긴 겨울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보니 벌어놓았던 돈을 색시들에게 몽땅 털리기 일쑤였다.

“입맛두 못 다시우?”

“입맛도 다시지마! 그깟 빈 아가리 다셔봐야 뭔 소용대가리여.”

일 부려먹는 재주와 남 기분 깨는 대는 명수인 춘배였다.

그러고도 용왕제가 열렸던 나루터 앞에서의 잔치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닻을 올려라!”

“돛을 올려라!”

“뗏줄을 풀어라!”

해가 금수산 마루 위로 서너 뼘쯤 떠오른 한나절이 되어서야 나루터를 향해있던 배들이 한양으로 떠나기 위해 하나 둘씩 뱃머리를 강 복판으로 돌렸다. 배가 북진나루를 떠나기 시작하자, 풍물패는 마지막 힘을 다해 풍악을 울렸다. 반짝이는 은빛 강물을 따라 누런 황포 돛을 펼친 배들이 떼를 지어 멀어져가고, 그 뒤를 뗏목들도 길게 실처럼 늘어지며 강을 따라 내려갔다.제1부 뱃길이 열리다 <5>

 

 

그 뒤로 징이 ‘징-징-징-’ 강물을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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