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첫 변론기일에 출석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에 대한 우려가 가시질 않고 있다. 새해 첫날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가 보통의, 상식적인 간담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장을 뛰는 기자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무기(武器)인 카메라와 노트북을 두고 몸만 참석하는 자리를 전제로 했다는 점이나, 이에 항의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기자들이 간담회에 참석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싸움터에 나가는 장병에게서 총을 두고 가라는 말과 다름없는 기자간담회였다. 언론을 모독하는 일이었고 기자정신을 얕잡아 본 것이다.

이에 대한 질타가 많은 국민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설 명절을 앞두고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기자들과 간담회 내지는 티타임을 열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명절 민심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실상의 대국민 여론전을 통해 보수 결집의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는 “특별검사 수사라든가 헌재 탄핵심판을 겨냥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 소상하고 진솔하게 밝힐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의 말을 뒤집어 보면 현 시점에서 대통령이 소상하고 진솔하게 말해야 할 자리는 헌재의 탄핵심판 변론장이다. 이미 기자 간담회에서 대통령은 소상하고 진솔하게 말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 했다.

박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무엇이든지 진솔하게 밝히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무엇보다 5일 2차 변론기일에 참석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기자간담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면 정정당당하게 인터뷰의 형식을 갖추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기자간담회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헌재에 출석해 성심성의껏 조사에 임해야 한다. 탄핵심판의 당사자인 대통령은 출석 의무가 없지만 헌재의 판결 시점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참석해 변론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국정공백으로 인한 혼란이 길어질 경우 많은 곳에서 누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특검이나 헌재의 조사에 소극적일 경우 국민을 다시 한 번 지치고 힘겹게 만드는 일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헌재에 출석할 경우 대리인단의 적절한 도움 없이 재판부나 국회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의 집중 공격이 쏟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산을 피해간다고 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신년 기자간담회 같은 형식의 간담회를 다시 열 경우 ‘위헌적 권리행사’라는 지적도 피해갈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최순실, 안종범 등 증인 입 맞추기를 위한 용도로 언론을 활용한다고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언론을 이용하거나 모독하는 일을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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