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청풍의 북진나루는 주운(舟運)을 이용하여 각지의 물화가 모여들어 매매되었고, 온갖 세곡을 한양의 용산창으로 실어 나르는 뱃길의 요지 중 요지요, 남한강 상류에 있는 크고 작은 팔십 여개 나루들의 본거지다. 그리하여 북진나루는 강물이 얼어붙어 뱃길이 끊기는 겨울 한철만 빼고는 일 년 내내 상시로 장이 열린다. 청풍 읍성 안에도 나흘과 아흐레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향시인 한천장이 있다. 하지만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삼월이 되면 뱃길이 열리고 북진나루 갯벌장은 읍내 향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졌다.

얼어붙었던 강물이 풀리고 눈 녹은 물이 불어나는 이맘때가 되면 북진나루는 물길을 타고 올라온 수많은 경강선들이 몰려들었고, 사월까지 한양의 경창으로 수송을 마쳐야 하는 세곡선들까지 모여들어 연일 북새통이 벌어졌다. 여각과 객주집 곳간에는 겨우내 쟁여놓은 곡물 섬과 특산품들이 그득그득 넘쳐났고, 강가 모래밭에는 배에서 부려져 객주집 곳간으로 미처 옮기지 못한 소금과 간절이 건어물들이 산더미를 이뤘다. 날이 누그러져 한데 잠을 자도 괜찮을 봄날이면 난장이 틀어지고, 장마당에는 선주들과 물건 값을 흥정하는 객주, 배에서 짐을 부리는 짐꾼들, 그리고 사방에서 모여든 보부상들이 좋은 물건을 좀 더 싼 가격에 받기 위해 악다구니를 벌였다. 상류와 하류에서 모여드는 온갖 물산들과 사람들로 북진나루는 흥청거렸고, 나루 언저리로는 주막집과 가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난장이 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북진나루 난장에는 황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들과 한양에서 올라온 경강선, 그리고 세곡선들이 강물을 빡빡하게 덮으며 연일 성시를 이루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북진나루가 예년에 비해 썰렁하기만 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어수선한 것도 한몫 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지난겨울이 유난히 길어 뱃길이 늦게까지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청명이 한참이나 지난 오늘에서야 겨우 한양으로 첫 배를 띄우게 되었다. 오늘이 바로 겨우내 묶여있던 배들이 강 하류를 향해 첫 닻을 올리는 날이다.

식전부터 북진나루에는 용왕제를 보려고 인근에서 몰려든 구경꾼들과 선주, 뱃꾼, 떼꾼, 짐꾼, 보부상들이 뒤엉켜 흡사 수천 마리의 학 떼가 무리 지어 앉은 것처럼 온통 흰색 천지였다. 아직은 아침 해가 떠오르지 않아 강바람이 차갑게 느껴졌지만 몰려든 사람들의 열기로 추위는 저만큼 달아나 있었다. 북진나루가 생겨나기도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아름드리 느티나무에는 형형색색의 오방색 천들이 나부끼고, 용왕제가 치러질 재단 주변은 악귀를 막느라 쳐놓은 금줄과 붉은 황토가 어우러져 스산한 기운을 자아냈다. 느티나무 앞 강가 한쪽에는 정선부터 내려와 한양의 광나루로 가는 동강 뗏목 수십 바닥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포구 가장자리에는 닻을 내린 많은 배들이 느티나무 쪽을 향해 뱃머리를 맞대고 열병을 기다리는 군졸들처럼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뱃전마다 세워져있는 장대 끝에는 선주들의 이름을 적은 성황기와 돛대 끝에 매달려있는 화려한 오색 깃발들이 산발한 머리칼처럼 휘날렸다. 구경꾼들은 고사상을 차리느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용왕제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귀를 붙이고 길게 붙여진 고사상에는 벗겨진 돼지가 통째 갸자에 실려 오고 삼색과실과 시루떡이 차려졌다. 일 년 내내 평안한 뱃길을 비는 선주들의 정성이 담긴 온갖 제물들이 열을 맞춰 진설되고, 제주는 제물을 올릴 때마다 놋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정갈하게 씻었다. 제상 앞 금줄에는 선주들의 바람을 적은 소지가 줄줄이 꼬여지며 박꽃처럼 피어났다.

눈 쌓인 금수산 마루 위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하얗던 봉우리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푸르던 강물도 아침햇살을 받아 주단을 깔아놓은 듯 빨갛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하늘머리가 열린다!”

징소리가 울리며 제관이 용왕제의 시작을 알리자 왁자지껄하던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다. 제관이 강신을 하고, 축관이 축문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대조선국 충청좌도 / 청풍부 북진리

남한강에 거하시는 용왕님전에 / 온갖 정성 드리올제

상탕에는 메를 짓고 / 중탕에는 목욕하고

향로향합 불 갖추고 / 황초한쌍 불밝히고

용국속에 옥조수를 / 열손으로 길어다가 일월같이 바쳐놓고

이곳 명당 한강수라 / 북진리 앞강물에 거하시는 용왕님전

노궁정성 드리오니 / 소뢰로서 드린 정성 대뢰로서 받으시고

일년이년 열두달을 / 두리둥실 우리선원

수로천리 한양길을 / 무사하게 왕래토록 제발제발 살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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