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은 삼면이 첩첩산으로 둘러싸이고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북쪽은 강물이 막고 있다. 게다가 고을을 감싸고 있는 가파른 산의 비탈과 강의 벼루를 이용하여 쌓은 읍성은 마치 둥지 안의 요새처럼 견고해 보인다.

청풍읍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읍성나루에서 배를 내려 서쪽에 있는 팔영루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했다. 팔영루는 청풍의 관문이다. 육중한 팔 척 석축 기단 위에 보루를 쌓고, 그 위에 날아갈 듯 세운 이층 누각은 한껏 멋을 더하며 유서 깊은 청풍의 역사와 위풍을 가늠케 했다.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팔영루의 홍예문을 들어서면 동문대로가 읍상리를 향해 곧게 뻗어있다. 동문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읍성의 중심부에 관아의 정문인 금남루가 화려한 모습으로 읍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금남루는 겹처마 팔작지붕의 이층 누각으로 난간을 둘렀으며, 아래층에는 높다란 고주석 사이로 삼문이 만들어져 있다. 이 세 개의 문 중 가운데문은 부사가 출입하고 양쪽문은 상민들이 드나든다. 금남루를 들어서면 또다시 내삼문이 있고, 그 문을 들어서면 부사가 집무를 보는 금병헌이 단아하지만 기품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일명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불리는 금병헌은 다른 부속건물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으며, 정면 여섯 칸, 측면 세 칸의 목조건물로 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동헌인 금병헌 뒤로는 강변을 따라 객사인 응청각과 고을 양반들과 공무 차 내려온 중앙관속들을 위해 연회를 베푸는 한벽루가 높은 석벽 위에 날아가듯 서있다. 관아의 중요건물들과 그에 따른 부속건물들은 정문인 금남루를 필두로 높다란 돌담으로 또다시 둘러쳐져 성안의 성처럼 보인다. 관아를 중심으로 강변 전망 좋은 곳에는 한양에서 낙향한 사대부나 부재지주들의 고래등 같은 별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반대쪽 산자락으로는 상민들의 초가들이 처마를 맞대고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다. 동문대로의 중심인 금남루를 지나면 관청을 비껴서 닷새에 한 번씩 열리는 한천장이 있다.

향시인 한천장은 한양의 육의전처럼 주로 관아에 물목을 대주는 기능을 한다. 장마당을 지나면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만 얹은 꺼칠한 가가들이 이어지고 그 끝은 곧바로 동문이다. 동문 밖 시오리쯤 떨어진 거리에는 망월성이 쌍둥이처럼 마주보고 있다. 멀리서 보면 읍성을 지키는 첨병처럼 보였다. 동문대로의 끝은 읍상리로 멀리 금수산이 보이고, 읍성과 북진나루 사이에는 널찍한 강물이 한가하고 여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청풍은 백두대간의 깊은 산중에 파묻혀 있지만 죽령과 조령이 인접해 있어 영남대로가 지척에 있다. 그러기에 부임길의 지방 관리들이나 임금의 부름을 받고 대궐로 가는 관리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님네들, 이 마을 저 마을로 물건을 팔러 다니는 보부상들이 한달음에 영남과 한양을 넘나들 수 있는 사통팔달의 요지이다. 더구나 영남대로보다도 더 빠른 한양으로 직통하는 물길 삼백 여리가 있었으니, 양귀비 미색에 옥소리까지 갖춘 격이다. 육로와 물길까지 갖춘 편리한 교통으로 청풍도호부에서 관할하는 수참(水站)만 해도 읍창·북창·서창·동창이 강나루를 따라 삼십 여리에 산재해 있었다.

북진나루는 이 지역에서 물화 거래의 중심 역할을 하는 남한강 상류 최대의 포구로 강을 사이로 청풍 읍성과 마주하고 있다. 금수산 큰 줄기가 뻗어 내려오다 용트림을 하며 강을 향해 만을 이루고,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 자리에 만들어졌다는 마을이 북진이다. 그런 까닭인지 망월성을 휘돌아 힘차게 내려 쏘던 급살물이 북진나루에 이르면 배불뚝이 항아리처럼 넓어지며 강물은 잠자듯 잔잔해진다. 나루 입구에는 온 마을을 뒤덮고도 남을 정도로 오래 묵은 느티나무가 신주처럼 서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강을 따라 층층을 이룬 느릅나무들이 북진마을을 더욱 안온하게 감싸고 있다. 읍성과는 떨어진 북진이 관아가 있는 청풍도호부의 향시를 제치고 상업 중심지가 된 것은 양반님네들이 장사를 천시하는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리적 요인에 있었다.

북진나루가 내륙 깊숙한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지만, 교통 요지였다. 북진에서 북쪽으로는 제천·원주로, 동쪽으로 순흥·봉화·태백으로, 남쪽으로는 죽령을 넘어 풍기·안동으로 동남쪽으로는 새재를 넘어 문경 땅으로 가는 육로가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북진은 물길이 발달하여 동쪽 물길로는 단양·영춘을 지나 강원도 영월 맡밭나루까지 이백 여리를 더 올라갈 수 있었고, 서쪽 물길은 조선의 도읍인 한양과 직통으로 통했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온갖 배들은 북진나루를 거치지 않고는 상류로 올라갈 수도 하류로 내려갈 수도 없는 물길의 목 지점이 북진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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