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충청매일 연재 대하소설 ‘북진나루’ 작가

소설 ‘소백산’ 속 뗏목꾼 모티브, 제대로 써보고 싶어

구성에서 집필까지 20년…대하소설 ‘북진나루’ 연재

제천 청풍 북진나루터 배경 조선 1850년 전후 100년

대행수 최풍원 일대기 통해 당시 민중의 삶·역사 담아

소설가는 소외되고 억압당한 소수의 이야기 전달해야

충청매일은 2017년 정유년을 맞아 지면의 질 향상을 위해 소설가 정연승(58)씨의 대하소설 ‘북진나루’를 연재하고 있다. ‘북진나루’는 순수창작 장편 대하소설로서 작품 구상과 집필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이 걸린, 숙고를 거듭한 작품이다. 소설 제목이 된 북진나루는 청풍관아에 속한 강마을로 1850년대 한양으로 통하는 남한강 물길교통의 요지였으며 주요 상업지역으로 한양의 경강선과 조운선이 드나들며 활발한 물산거래가 이루어졌던 곳이다. 소설은 1850년 전후 100년이라는 시대적 공간과 북진나루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함께한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민중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정연승 작가는 충북 제천시 덕산면에서 출생해 청주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4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반향’이 당선돼 등단한 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진주신문 중편소설 공모에 ‘소백산’(1997년)이 당선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단편소설집 ‘우리동네 바람꽃이용원’, 중편소설집 ‘진주신문 수상작품집’을 비롯해 공저로 ‘충북의 문학과 예술 그 숨결을 찾아서’, ‘충북의 사찰을 찾아서’, ‘충북의 인물’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장을 엮임하고 있다. 다음은 정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대하소설 ‘북진나루’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북진나루’를 처음 구상한 것은 199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에 당선되었던 중편소설 ‘소백산’의 뗏목꾼들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 남한강을 따라 고단한 삶을 살았던 뗏목꾼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시작할 당시는 그저 뗏목꾼들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현장답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다 보니 호락호락한 소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때로는 괜히 건드렸다는 후회가 되기도 했고,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막막하고 두렵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구상 하고 답사 하고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온갖 정보들이 홍수를 이루고,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볼거리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인 글쓰기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우리 고장의 역사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 우리 고향 조상들의 이야기를 입맛 나게 써보고 싶었다. 그들이 어떤 힘겨운 삶을 살아오며 현재에 이르렀는지 뿌리를 알려주고 싶었다. 뿌리를 알면 어떤 풍파에도 함부로 몸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진나루’의 등장인물들이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현재도 유효하다. 우리 몸속에는 그들의 유전자가 살아 움직이고 있기에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은 동떨어진 별개가 아니다. 따라서 앞서간 그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지나간 역사를 배우거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족적을 다시 되새겨보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진나루’ 연재를 시작한 의도이기도 하다.

●대하소설 ‘북진나루’의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은.

시대적 배경은 조선 후기 1850년 전후 약 100년 동안의 이야기이며, 공간적 배경은 청풍의 북진을 중심으로 남한강을 따라 단양, 제천, 충주가 주 무대이다.

●이 같은 배경을 설정하게 된 이유가 특별히 있다면.

먼저 시대적 배경을 조선 후기로 삼은 것은 그 시대가 지금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청풍의 북진나루로 삼았다. 북진은 충북 북부지역인 제천시 청풍면에 있는 나루터 마을이다. 지금은 청풍이 시골마을로 쇠락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종3품 도호부사가 관장했던 위세 높은 마을이었다. 이처럼 청풍이 번성했던 것은 마을 앞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에서 발원해 한양을 거쳐 서해 강화로 흘러가는 남한강은 중요한 물길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경부고속도로처럼 나라에 필요한 온갖 물산들을 실어 나르던 대동맥이었다. 이러한 물길로 인해 아주 오래전부터 북진나루는 많은 배들이 오가며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루어졌다. 북진나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우리네들의 질박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고향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내 고향은 청풍에서는 좀 떨어진 덕산면 성내이다. 청풍은 고향이나 다름없이 가깝고 정겨운 곳이다. 작가로서 자신의 피와 살을 만들어준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고향에 대한 조금의 보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작가가 ‘북진나루’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주제는.

그럴싸하게 말하면 민중사다. 그러나 좀 더 그들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고유상사제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점차 소멸돼가는지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북진나루’에서 정말 말하고 싶은 주제는 ‘민중들의 힘’이다. 언뜻 보면 권력자가 세상을 움직이고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잡초처럼 보잘 것 없는 이들이 세상의 주인이고 역사의 주체이다. 권력자들은 민중들이 자신들을 무조건 따른다고 착각하지만, 민심을 거스른 권력자는 민중에 의해 언젠가는 반듯이 심판을 받는다.

‘북진나루’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민중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누구에게도 대거리 한 번 하지 못하고 그저 포기하고 순응하는 인물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미미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미미한 힘들이 폭발한다. 그리고 세상이 변화한다. 결국 민중의 삶을 외면하면 무엇이든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과 진정한 민중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다.

●‘북진나루’의 전체 구성을 간단하게 소개 한다면.

‘북진나루’는 1부 뱃길이 열리다 부터, 11부 북진여각 막을 내리다 까지 총 11부로 구성돼 있다. 전체 원고 양은 200자 5천매 정도다. 주인공인 최풍원 일대기를 통해 당시 충청좌도에서 벌어지는 시대상황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 설정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주인공이 있다면.

당연히 ‘북진나루’의 주인공 최풍원이다. 최풍원은 북진여각의 주인이자 대행수로 이 지역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상인들의 최고 우두머리다.

●주인공 외에 주변 인물들 중 애착이 가는 인물은.

봉화수이다. 봉화수는 최풍원의 사위로 북진여각의 이인자다. 그는 최풍원과는 달리 시류에 따라 변화를 시도하는 진취적 인물이다.

●대하소설 ‘북진나루’ 외에 소설가로서 소설 속에서 얘기하고 싶은 주된 분야가 있는지.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다. 소설을 쓰는 작업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힘겨운 일이다. 소설은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한 마디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설령 한다고 해도 세상은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소설가는 그들의 입이 돼야 하고 그들의 종이 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태평성대라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더라도 어느 구석에선가 소외되고 억압당하고 있는 소수의 주변인을 찾아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제껏 써왔고 앞으로도 이 분야를 멀리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다른 작품 집필 계획이 있는지.

특별한 집필 계획은 없다. 한 때는 작품을 쓰면서도 다음 소설은 뭘 써야할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소설은 특별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것이 이야기꺼리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무리하고 싶은 작품은 있다. ‘우리동네 바람꽃이용원’ 이후 스무 편이 넘는 ‘우리동네(청주시 서원구 모충로)’ 연작소설을 탈고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이 동네에서 살아온 지 삼십년이 훨씬 넘었다. 그동안 우리동네 이야기를 단편적으로는 여러 지상에 발표했지만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한데 모으지 못했다. 곧 이 지역도 재개발 된다고 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한 이년쯤 우리동네 사람들의 끈끈한 이야기에만 매달려보고 싶다.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충북작가회의) 회장으로서 현 시국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특히 문화계블랙리스트 작성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면.

작가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시대를 방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기위해 행동은 하지만 작가들의 반응은 느리다. 다른 표현예술에 비해 쓰는 일은 깊은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성급한 판단이 많은 이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국은 판단하고 말 것도 없다. 한 마디로 황당하다. 시시비비를 가릴 그 무엇도 없다. 사람이라면 지켜야할 최소한의 상식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삼척동자도 판단할 문제를 먹물께나 먹고 이 나라 최고 수재라고 하는 인간들이 법리를 들먹이며 변호하는 꼬락서니가 역겨울 뿐이다. 배운 것을 제대로 쓰지 않고, 아는 것이 오히려 세상에 독이 된다면 배워서 뭘 하겠는가. 자식에게 손자에게 후손에게 치욕스런 족적을 남기고 싶은가? 대중이 개돼지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쫓는 그런 자들이 개돼지다.

문화계블랙리스트 역시 한 마디로 거론할 가치도 없다. 권력의 눈치만 살피며 그들의 입맛에 맞춰 아무런 고민도 없이 따른 해바라기 문화계 관료들이 측은할 뿐이다. 그들이 명단을 작성해 어떤 의도로 이용하려 했는지도 알고 싶지 않다. 그들이 어떤 비상식적인 짓을 벌이더라도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예술 행위의 궁극적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한 그깟 하찮은 명단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예술가들의 정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저 예술인들은 묵묵하게 이제껏 해오던 활동을 계속하면 될 일이다. 예술은 길고 권력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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